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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것이 지금 여기에 꽃피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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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호 06면

1 16세기 여인상(논개), 130X62㎝, 비단에 진채, 2006 2 자운율사 초상, 138X100㎝, 비단에 진채, 2008 3 이만형 초상, 62X50㎝, 비단에 진채, 2008 4 김화선 초상,54X30㎝, 비단에 진채, 2006

그 사람의 고갱이를 뽑아낸다
-전신(傳神) 초상화의 세계
금릉(金陵) 김현철(50·간송미술관 연구위원)씨는 석 달째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개인전을 앞두고 밥 먹을 시간도 아껴야 할 처지라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에 있는 작업실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코에서 단내가 날 만큼 그리고 또 그려 연 ‘초상-그 전신(傳神)의 세계’(10월 15~25일 한벽원갤러리)는 그런 노력 덕에 아는 이들로부터 ‘정신이 살아있는 전시회’란 평을 들었다. 스승인 가헌 최완수(한국민족미술연구소 연구실장) 선생부터 친구·부모까지, 그가 되살린 현대판 전신 초상화의 세계는 묵직한 중량감에 인간을 돌아볼 수 있는 풍부한 내용으로 보는 이들의 시선을 잡아당겼다.

전신(傳神)이란 초상화를 그릴 때 외모만 본떠 베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품고 있는 정신성까지 그려낸다는 뜻을 담은 단어다. 조선시대 초상화는 ‘터럭 하나도 똑같이 그린다’는 극사실의 바탕 위에 한 인물의 일생을 되새김질해 넣은 풍부한 결로 아름다운 전통을 이뤘다. 조선 후기 풍속인물화를 마무리한 혜원 신윤복의 서른 폭 그림첩을 ‘혜원 전신첩’이라 부르는 이유다. 금릉 김현철씨가 간송미술관에 입문한 뒤 맨 처음 혜원의 ‘미인도’를 임모하며 전신의 세계에 들어선 배경이기도 하다.

금릉은 “돌아가신 분은 사진 자료를 기본 삼아 유족들이 들려주는 고인에 대한 추억을 많이 참고했다”고 밝혔다. 생전에 그분이 견지했던 성품이나 행한 일, 후손에게 남긴 말씀 등 다양한 콘텍스트를 그림 속에 녹여 넣다 보니 한 점당 보통 6개월씩 걸렸다고 한다. 그는 “얼굴보다 손이, 손보다 발 그리기가 더 어렵다”고 했다. 사람들을 관찰하기 위해 전철을 애용하기도 했고, 개인 소장가가 공개하는 조선시대 초상화를 보러 먼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김현철씨는 현실에 맞는 새로운 초상화 창작을 위해 여러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채색을 자연스럽게 부각시키려 뒤쪽에서 그려내는 배채(背彩)를 쓴다. 물감이 비단 양쪽에 접착되어 서로 당겨주며 힘의 균형을 이루고, 뒷면의 채색이 앞으로 비쳐 나오며 은은하고 깊이 있는 발색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몸과 의복 선은 가늘고 힘찬 철선묘(鐵線描)로 표현하고 인물 묘사에 집중하기 위해 배경은 밋밋하게 처리한다. 인품을 나름 드러내기 위해 그 시대에 썼음 직한 안경을 걸치게 한 ‘송설당 초상’은 기품과 개성을 동시에 일궈냈다.세필에 매달리다 보니 시력이 많이 떨어져 특별히 맞춘 그림용 돋보기를 쓰고, 어깨 근육이 뭉치면서 여기저기 아파 오기에 널빤지를 조립해 만든 틀 위에 엎드려 그림을 그린다는 그에게 “왜 사서 그 고생이시냐”고 물었다. “사람에 빠져들어 수없이 붓질을 하고 있으면 거기서 빠져나오기가 힘들다”는 답이 돌아왔다.

5 리프트 인 더 바디1 6 리프트 인 더 바디2

종이의 놀라운 변신
-2008 대한민국 종이문화예술작품 공모대전 수상작 특별전

‘견오백 지천년(絹五百 紙千年)’이란 말이 있다. 비단이 500년 가고 종이는 1000년을 견딘다는 얘기다. 종이는 그만큼 뛰어난 보존력을 지닌 인간사의 중요한 동반자다. 종이가 없는 인류 문명은 상상할 수 없다. 한국 전통 속에 종이를 소재로 한 문화가 풍부한 까닭이다. 종이문화재단(이사장 노영혜)이 주관한 ‘2008 대한민국 종이문화예술작품 공모대전’은 우리나라 종이문화의 전통을 오늘에 잇자는 종이 페스티벌이다.

지승·색지·고지·지호공예 등 전통 종이공예 외에 종이를 활용한 다양한 기법 작품이 나와 상금 1000만원의 대상을 놓고 실력을 겨뤘다. 10월 21일~11월 23일 서울 장충동 종이나라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시상작 특별전 ‘종이의 기억 그리고 그 아름다운 탄생’은 말 그대로 ‘종이의 놀라운 변신’으로 관람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일반부 대상(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의 영예를 안은 작품은 박아영씨의 ‘리프트 인 더 바디(Lift in the Body) 1, 2’다.

가늘게 자른 여러 가닥의 펄 종이를 미리 스케치한 인체 형상 위에 입체적으로 늘어놓아 몸의 근육과 핏줄, 피부 밑 내부의 조형성을 드러냈다. 제목 그대로 종이를 들어올려(lift) 신체의 물질성을 노출시킨 상상력과 기교가 잘 맞아떨어졌다. 박씨는 “땅(나무)에서 와서 땅(재)으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종이와 인간은 닮은꼴이라는 생각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문의 02-2279-7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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