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장새풍속>9.활짝 열린 人文교양서적 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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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최근 출판시장의 동향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사례 두가지.4백만부 판매기록을 세운 김진명의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비롯해 김한길의 『여자의 남자』,이제훈의 『토정비결』등으로 90년대 초 출판시장을 주름잡았던 도서출판 해냄이 최근 스티븐 굴드 하버드대 교수의 『과학의 숨겨진 이야기』,도리스 마르틴의『감성지수(EQ)』등 「무게」있는 책을 기획하는 쪽으로 선회했다는 사실이 그 하나.20년동안 인문과학에 매달렸던 도서출판 까치가 2백50여종을 출판한 끝에 마침내 인문교양서 『신의 지문』을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려놓았다는 점이 그 둘.두권짜리인이 책은 발간 4개월만에 13만부를 팔았다.
김홍신의 『인간시장』과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으로 대표되던70년대의 문예시대,이영희의 『우상과 이성』과 한완상의 『민중과 지식인』이 즐겨 읽히던 80년대 사회과학서 시대에 이어 9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바야흐로 인문교양서 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다.지난주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종합 집계 20위에도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1』(청년사),『로마인 이야기1』(한길사),『인간본성에 관한 10가지 철학적 성찰』(자작나무),『신의 지문(상)』등 인문서적 이 4권이나 들어 있다.교보문고가 올들어 지난 10월까지 판매한 부수와 지난해 10월까지의 부수를 비교한 자료에 따르면 인문서적의 경우 지난해 32만9천4백부에서 35만5천부로 8%나 늘어났다.같은 기간 소설판매부수 증가율은 4.
8%에 그쳤다.
지금까지 국내 독서경향에 비해 약간 고급스런 인문서적 쪽으로독자들이 옮겨가게 된 배경은 먼저 80년대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했던 고급독자들이 이동,유입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찾아야 한다.80년대 사회과학 독자들의 관심 의 폭이 넓어지면서 인문서적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는 것이다.이는 또 20대가 이끌던 국내독서시장의 주도권이 30,40대로 분산되고 있음을 말해준다.인류학.고고학등의 서적까지 즐겨 읽히는 것도 이런 흐름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때마침 불어닥친 세계화와 정보화도 인문서적 붐에 한몫 톡톡히했다.정보와 교양이 절실히 필요하다보니 아무래도 소설로 가던 손길이 뜸할 수밖에 없다.또 대입 수능시험으로 종합적인 사고추리력의 중요성이 크게 높아짐에 따라 인문 쪽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국내독자들의 인문적 관심을 폭발시킨 책은 아무래도 유홍준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꼽아야겠다.세계화 시대를 맞아 다른 문화권에 앞서 우리 문화에 대한 서적에 목말라하던 독자들의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주면서 이 책은 지금까지 1 ,2권 합쳐 2백만부나 팔렸다.
요즘 인기있는 인문서적들은 과거처럼 딱딱하지 않고 쉽게 풀어썼을 뿐 아니라 환경등 다른 분야와 접목을 꾀하고 있다는 점이특징이다.분야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현상은 자연과학서적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반욱의 『꽃은 남성이다』,리 처드 리키의 『제6의 멸종』,데스먼드 모리스의 『머리기른 원숭이』등 현재 자연과학분야의 베스트셀러 대부분은 과학에 인간 삶의 이야기를 곁들인 책들이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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