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두뇌 올림픽’ 의미 있는 첫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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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마인드스포츠의 장래는 과연 어떤 것일까. 베이징에서 열린 제1회 세계마인드스포츠게임(World Mind Sport Game)에 모인 143개국 4083명의 선수를 보며 떠오른 생각은 이게 전부였다. 11세 소년부터 백발이 성성한 60대까지 동호인 냄새가 풀풀 나는 이들의 모습은 아직 ‘선수’라고 부르기엔 부족함이 많았으나 전체 인상을 말한다면 “첫 대회치고는 훌륭했다”고 말할 수 있다. 중국의 ‘돈’과 유럽의 홍보 능력이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그러나 마인드스포츠가 주최 측의 선전처럼 올림픽의 깃발 아래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두뇌 경연장으로 자리 잡는다는 것은 한갓 꿈일지 모른다. 긴 세월이 필요한 문제였다. 우선 실력 차가 너무 컸다. 바둑의 경우 한국·중국·일본·대만 정도가 어느 정도 수준을 갖췄고, 일부 유럽 선수들이 우리의 아마 강자 수준으로 따라온 정도였으며, 나머지는 우리나라 기원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그런 수준이었다. 똑같은 장면이 체스나 브리지 쪽에서 벌어졌다. 이곳에선 한·일의 선수들이 먼 변방의 하수였다. 그러나 아시아권에서도 중국은 달랐다. 그들은 체스나 브리지에서도 유럽을 꺾으며 25개의 금메달 중 12개를 휩쓸었다. 종합 순위에서 압도적 1위였다. 체스의 러시아는 금 4개로 2위, 바둑의 한국은 금 2개로 3위에 올랐다. 올림픽에서 미국을 제치고 1위에 올랐던 중국은 이번 마인드스포츠게임을 통해 육체뿐 아니라 정신에서도 세계 최강임을 보여준 것이다.

중국은 이런 자랑(?)을 위해 무려 130억원 이상의 경비를 지출해야 했다. 이번 대회의 주최자는 프랑스에 본부를 둔 국제마인드스포츠협회(IMSA)라는 단체다. 회장은 호세 다미아니. 세계브리지연맹 회장도 맡고 있는 그는 뛰어난 외교 능력으로 브리지와 체스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산하 국제경기연맹의 인정 단체로 등록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4년 뒤 2회 대회를 열기 위해선 두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이번의 중국 같은 스폰서를 찾는 문제, 다른 하나는 IOC와의 관계다.

첫째, 돈 문제인데 마인드스포츠는 아직 상업성이 떨어지고 리더 격인 유럽인들은 돈 댈 생각이 별로 없다. 체스와 바둑에 친밀감을 표해온 빌 게이츠가 뭔가를 하지 않는 한 2회 대회가 쉽지 않을 거란 전망은 그래서 나온다.

또 이번 대회를 주시해 온 IOC는 차기 대회가 올림픽 깃발 아래 열리기 위해서는 바둑과 함께 보드 게임의 또 한 종목이 국제경기연맹에 가입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바둑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또 한 종목, 즉 체커는 너무 단순하다는 평이고, 장기는 한국·일본이 제각각 다른 장기를 보유하고 있어 통일이 어렵다.

모든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보드게임이 스포츠란 이름으로 한자리에 모였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기적이나 놀라운 변화는 항시 일어나는 법이고 멀지 않은 장래에 그것이 마인드스포츠에서 일어난다 해도 그리 신기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번 대회의 한국 선수들 경비는 체육진흥기금이 지원했다. 국내만 본다면 사실은 이것도 놀라운 변화다. 중국과 유럽에 이어 한국에서도 바둑 같은 정신 게임이 스포츠로서 공식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다.

박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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