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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의여성정치시대>上.'우먼 파워'가 大選 승부 갈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96년 미국의 대통령선거는 가장 재미없고 시시한 선거로 불렸다.그러나 미국 여성들에겐 가장 흥미롭고 보람있는 선거였다.미여성들의 표가 이번처럼 폭발적 힘을 발휘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94년 중간선거는 백인유권자들의 분노에 휘둘렸고 그들의 울분은 공화당이 40여년만에 상.하원을 차지하게 했다.그러나 96년 대선 드라마는 백인유권자가 아닌 여성유권자의 몫이다.
클린턴과 도울은 남성표를 44%씩 나눠 가졌다.
여성표는 달랐다.클린턴이 도울보다 17%포인트나 더 많이 얻었다.역대 선거에서 이번처럼 여성표가 뚜렷하게 갈린 적은 없었다. 유세과정도 여성들의 관심과 취향에 압도됐다.상대후보를 비방하는 유세는 외면당했다.누구보다 제일 먼저 거칠게 항의하고 나선게 여성단체들이었다.교육.탁아시설.가정의 가치.의료부조등 이번 선거를 지배한 이슈들도 여성들의 관심사였다.
이런 흐름을 먼저,그리고 철저히 이용한 사람은 클린턴이다.상대방의 비난에는 일절 대꾸하지 않았다.
공약은 철저히 여성들의 걱정거리를 파고들었다.유세에 들어가기앞서 강간범에게 중형을 내리는 법안을 제안했다.유방암 연구엔 3천만달러의 예산을 배정했다.
그러나 도울은 유세 내내 여성표를 밀어냈다.여성들이 관심없어하는 15%의 세금감면만 외고 다녔다.종반엔 클린턴 비방에 몰두했다.여성들이 싫어하는 짓만 골라 한 셈이다.
선거가 끝나자 미 방송사 앵커들은 한결같이 이 점에 주목했다.ABC의 피터 제닝스는 『여성,특히 중산층 여성을 주도면밀하게 공략한 클린턴의 승리』라 평했고 NBC의 워싱턴총국장 러셋은 『이번에 확인된 여성표의 영향력이 미국정치에 미칠 파장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부 평자들 사이에선 미국정치의 여성화에 대한 우려가 일고 있다.생활주변의 일에만 몰두하기 쉽다는 것이다.
사실 미국이 대내외적으로 지금처럼 태평성대를 구가한 적은 없다.바로 그점이 여성들의 목소리를 두드러지게 했다는 분석도 있다.그러나 이 역시 남성위주의 편견이라는 비판에 부닥치고 있다. 어쨌든 미국엔 전체 유권자의 52%를 차지하는 여성들의 권익을 옹호하고 정치적 의사표현을 결집하는 풀뿌리운동이 왕성하다.「변화를 위해 뭉친 여성」등 워싱턴에만 각종 여성 정치단체들이 1백여개가 넘는다.전국적으로는 셀 수조차 없을 정도다.
이들의 활동이야말로 이번 대선의 결과를 낳은 또하나의 주요인이었다는 얘기다.
워싱턴=김수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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