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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위석칼럼>서울 시청 바라보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수양산(首陽山)바라보며 이제(夷齊)를 한(恨)하노라」로 시작하는 것은 성삼문(成三問)의 충절(忠節)시조다.지금 서울시청앞에는 덕수궁 담을 끼고 낙엽이 행인의 마음을 쓸쓸한 박자로 진동시키며 떨어지고 있다.「서울시청 바라보며 조 박사(趙博士)를 한하노라」.
이렇게 한 구(句)를 읊고 싶어진다.백이(伯夷).숙제(叔齊)는 만고의 충신이다.조순(趙淳)시장은 한국의 대표적 경제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시청 공무원과 시내버스 업자가 짜고 버스 승객의 가계(家計)와 시 재정을 「삥땅」하기에 앞서 조순 박사의 경제학은 낮잠만자고 있었던 것일까(金泳三대통령은 경제학자가 아니다.그의 문민정부가 국영기업을 민영화하고 거기서 들어오는 돈 으로 사회간접자본시설 짓는 것을 신경제 계획의 핵심 사업 가운데 하나로 대대적으로 발표했다가 최근 슬그머니 용두사미가 되고 만 일을 두고는 머리도 빌리기 힘든 점에서는 건강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깨닫는 한숨이나 한번 길게 쉬고 말 수도 있다).경제학자 시장이라면 당연히 서울 시내버스에 시장(市場)경쟁 원리를 도입했어야 한다고 본다.예컨대 다음과 같이 그 엉터리를 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시청은 각 노선 시내버스 운행 사업권을 경쟁 입찰에 부친다.
각 노선을 구획하고 운행 경로와 정류장을 정하는 것은 수요 조사등을 통해 시청이 한다.
사업권 기한은 1년으로 할 수도 있다.기름값 변동에 대해서는표준 보상 내지 환급 조건을 따로 달 수도 있다.각 노선의 사업권에는 이 밖에도 시간대별 최소한 배차 대수,승차 요금등을 입찰 조건으로 시청이 미리 결정해 공표한다.즉 팔려는 사업권의규격조건 가운데 꼭 필요한 것은 정확히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그 밖 의 것은 경영을 잘해 이문을 챙길 수 있도록 업자의 창의에 맡겨야 한다.
버스업자측에서 볼 때 이 사업권은 반드시 돈을 내고 사는 것은 아니다.어떤 노선 사업권은 돈을 「받고」 살 수도 있다.
즉 시청이 보조금을 업자에게 지급하는 경우다.
입찰 결과 모든 응찰자들이 그 노선 운영에서 결손을 예상하고부 (負)의 가격을 써 넣었을 때는 가장 적은 마이너스의 입찰가를 쓴 업자에게 낙찰될 것이다.시당국으로선 서울시 전체로 보았을 때 사업권경매에서 생기는 수입과 지출이 0에 가깝게 되도록 버스값을 연구해 산정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내가 제시한 이 엉성한 패키지는 한 예시 모형에 지나지 않는다.시내버스 사업권을 경쟁화하는 모델은 방향.간결성.완벽도를 두고 여러가지 대안이 있을 수 있다.1년간 노선 운행권 대신 승차요금을 입찰금액으로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한 노 선에 다수 회사를 낙찰하여 경쟁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요컨대 종전처럼 시 공무원이 버스요금을 허가하는 제도를 그대로 놓아두고서는 이 「부패공화국」중에서도 「복마전」의 부패를 개혁할 수 없다는 점이다.공직자 부패는 결국 시민의 돈을 뜯어먹는 행위다.
시민의 돈 열을 뜯으면 공직자가 하 나쯤 먹고 업자가 셋쯤 먹고,나머지 여섯쯤은 비능률로 사라져버린다.방에 불을 때고 방문을 열어 둔 경우처럼 부패의 경제적 나쁜 점은 남의 돈을 긁어다가 허공에 그 태반을 뿌린다는 점이다.그러나 부패의 가장 나쁜 점은 경제적 척도로 잴 수 없다.다름 아니라 인간의 영혼과 문화적 가치체계를 파괴하는 것이 그것이다.
부패에 대한 처방은 감사나 검찰 강화가 아니다.이런 처방은 아무리 잘해도 비용을 감당할 수 없이 증가시키며,나쁠 때는 부패를 감사나 검찰 기구로 확산시키게 될 것이다.도덕 강의로는 이미 부패한 어른들을 낫게 할 수 없다.시장의 경 쟁 햇볕에 내놓을 수 있는 것이면 모두 내놓음으로써 음습한 데서 번성하는부패 박테리아를 퇴치하자는 것은 고상하지 않은 시장원리에 의해서 고상한 인간 영혼과 문화가치를 부패로부터 구제하자는 약방문이다.감사와 검찰,그리고 도덕 강의등 유교적 행정 방식으로는 한국의 부패를 치료할 수 없다.
지도자는 이 사실을 알아야 하고 알면 실천할 리스크를 져야 한다.경제학자 조순 박사가 앎과 실천이 다른 사람이든지,실천할리스크를 지기에는 너무나 용력이 부족한 사람이었던 것으로 역사에 남게 될까봐 두렵다.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으 로 기껏 내놓았다는 「버스운영개선 종합대책」이라는 것이 더 한탄스럽다.경쟁에 의한 가격과 품질 결정은 아직도 뒷전에 놓아 두고 시민단체와 공인회계사한테 부패와 비능률의 통제 책임을 전가시키려는 발뺌 대책으로밖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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