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코너>읽기쉬운 신문이 좋은 교재-가로쓰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국어교사인 나는 교과서 이외의 읽기자료로 신문을 자주 활용한다.신문이 활기 넘치는 수업,생각하게 만드는 수업을 하는데 아주 요긴하기 때문이다.또 신문은 수학능력시험의 취지를 살리기에도 빼어난 교재다.
수능시험의 언어영역은 주어진 글을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을측정.평가하는 경향이 뚜렷하다.그리고 읽기영역의 지문은 문화.
사회.과학.예술등 통합교과서적 성격을 띠고 있는데다 현실적 문제와 관련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학생들로 하여금 시사문제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데도 신문은 흠잡을 데 없는 교재다.
언젠가는 문학수업 시간에 이상(李箱)의 시 『오감도』와 소설『봉벌기』가 세로쓰기된 책을 복사해 나눠주고 현대인이 겪는 자아 분열과 현실에 대한 인식을 파악토록 했다.
그러자 학생들은 『가뜩이나 어려운 작품을 세로로 읽으니까 더어렵고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다』『어려운 한자가 많아 의미파악조차 어렵다』『신문 빼고는 온통 가로쓰기로 된 인쇄물만 보다가 느닷없이 세로로 쓴 시.소설을 보니까 몹시 불편 하고 문장도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아 당황스럽다』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이런 반응을 보며 독자를 진정 배려하는 신문이라면 「가급적 한글」로 「가로쓰기」를 통해 학교교육과 생활교육이 제대로 맞물리도록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마침 중앙일보가 지난해한글날 산뜻한 전면 가로쓰기를 단행한 것을 보고 참 기뻤다.
학생들도 『신문이란 남녀노소가 두루 읽는 대중 문자매체니까 읽기 쉬워야 하며 집중이 잘 돼야 읽은 부분을 다시 읽는등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으니 가로쓰기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했다.이밖에도 학생들의「가로쓰기 예찬론」은 다양 했다.
『문학작품들도 오래전에 세로쓰기에서 가로쓰기로 변했다.그래서내용을 파악하기도 훨씬 쉽고,더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는 것같다.좀처럼 익숙지 않은 세로쓰기 신문은 읽는데 급급해 다 읽고나도 뭔가 빈듯한 느낌이다.』『세로쓰기로 된 글은 읽는 도중 내용이 끊어질 때가 많아 연결부분을 찾느라 시간이 더 걸린다.
이에비해 가로쓰기로 된 글을 읽으면 속도감이 생기고 내용도 더빨리 정리할 수 있다.』『글을 처음 배울 때부터 가로쓰기로만 익힌 탓인지 세로쓰기 신문을 보려면 이 해가 잘 안되고 거부감이 생긴다.』 신문이 「살아있는 교과서」 역할을 할 수 있다면현행 교과서가 전부 가로쓰기로 돼있는 만큼 신문 역시 가로쓰기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또 수직적 인간관계와 권위의식에서 벗어나 대등하고 평등한 인간관계,소유가 아닌 경험의 교환이라는 함축적 의미가 가로쓰기에담겨있다고 본다.컴퓨터 보급,전자신문 제작,빈번한 외국어와 외래어 차용,세계화등 어느 모로 보나 신문의 가로 쓰기는 시대적요청임에 틀림없다.
이정숙〈서울중화고 교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