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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규제 어떻게 해야 하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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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들불처럼 번지는 도박을 잠재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합법 도박부터 규제해야 할까, 아니면 불법 도박 단속에 주력해야 할까. “동시에 진행하면 될 것 아니냐”고 반문하고 싶겠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국무총리 소속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가 합법 사행산업에 대한 총량 규제에 나서면서 도박 규제의 방법론을 둘러싼 논쟁이 거세지고 있다. 관련 부처들은 규제 기준과 대상 등에 문제를 제기하며 내용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김규호 ‘도박사업 규제 및 개선을 위한 전국 네트워크(도박규제 넷)’ 사무총장과 서천범 한국레저산업연구소장을 각각 인터뷰한 뒤 두 사람의 대담 형식으로 정리했다.

사감위는 경마 등 사행산업을 강력히 규제하는 내용의 ‘사행산업 건전발전 종합계획’ 시안을 마련했다. 지난해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0.67%인 사행산업 규모를 2011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국가의 사행산업 평균인 0.58% 수준으로 맞추겠다고 제시했다. 합법 도박산업의 총량을 14조8000억원대로 제한함으로써 도박 열풍을 잠재우겠다는 것이다. 또 이용객의 과도한 베팅을 막기 위한 고객 전용 전자카드제 도입, 경마·경정·경륜 장외발매소 규제 등을 추진하고 있다. 먼저 이 시안에 대한 의견을 두 사람에게 물었다.

-총량 규제에 대한 입장은.

김규호=“찬성한다. 우리는 총량을 50% 줄일 것을 요구해 왔으나 1차적으론 현재 상태에서 늘지만 않아도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서천범=“총량 규제는 난센스다. 선진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무조건 때려잡고 보자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보다 현실성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

김규호=“물론 외국에 없는 규제 방식이다. 하지만 선진국과 우리는 사행산업의 풍토 자체가 다르다. 선진국은 오랜 기간 사회적 합의를 거쳐 가면서 레저 문화로 자리 잡아 왔다. 우리는 그때그때의 정치·사회적 필요에 따라 우후죽순으로 만들어져 왔다. 도박 중독을 예방할 시스템이 완벽하게 갖춰질 때까지는 총량이라도 막아야 한다.”

서천범=“총량 규제는 편의주의적 발상이다. 규제를 하겠다면 1인당 지출액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1인당 지출액이 늘 경우 페널티를 주고, 브레이크를 걸면 된다. 현재 경마·강원랜드 등의 1인당 하루 평균 지출액은 고객이 늘면서 전반적으로 줄고 있는 상황이다.”

장외발매소에 대해서도 두 사람은 평행선을 달렸다. 사감위는 현재 마사회 전체 매출 중 80%인 장외발매소 매출 비율을 50%로 줄일 계획이다. 김 총장은 “미국이 라스베이거스 사막 한가운데에 카지노를 설치한 이유가 무엇이겠느냐”면서 “교통 요지에 있어 접근이 쉬운 장외발매소를 5년 이내에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고 했다. 서 소장은 “장외발매소를 줄이면 그 수요의 90% 이상이 불법 도박 쪽으로 갈 것”이라며 “입장정원제와 출입일수 제한, 1인당 지출액 제한 등을 통해 건전하고 쾌적한 환경을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반박했다. ‘풍선 효과냐, 기관차 효과냐’에 관한 인식 차이 때문이다. 두 사람은 고객 전용 전자카드 도입에 대해서만 일치를 봤다.

서천범=“지난해 합법 사행산업 매출액이 2조원 이상 늘었다. ‘바다이야기’ 등 불법 도박에 대한 대대적 단속으로 갬블러들이 합법 도박으로 옮겨간 것이다. 반대로 합법 쪽을 규제하면 불법 쪽이 커지는 ‘풍선 효과’가 생길 것이다. 성매매 단속과 같은 현상이다. 수요의 총량이 줄어든 게 아닌데, 단속을 하면 변칙적 형태가 늘고 음성화할 수밖에 없다.”

김규호=“풍선 효과도 일리가 있지만 기관차 효과의 영향력이 훨씬 크다. 기관차, 즉 합법 도박이 미친 듯이 달려가면서 불법 영역이 뒤따라 커지는 상황이다. 먼저 기관차를 세운 뒤 풍선 효과가 생기지 않도록 강력한 단속을 펴야 한다. 불법만 잡으려고 해서는 악순환이 멈추지 않는다. 도박 중독자를 보면 대개 합법 도박을 통해 중독에 빠지고 있다.”

서천범=“기관차 효과를 실증적으로 입증한 연구 결과는 없다. 합법 도박을 규제하면 해외로 원정도박을 떠나는 인구가 크게 증가하고 국부 유출이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마카오를 찾은 한국 관광객 수는 2004년보다 3.4배 늘어난 22만5000명에 달했다. 이들이 지출한 도박 자금은 22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규호=“당장 해외로 유출되는 국부보다 국내에서 무분별하게 확장되는 데 따른 폐해가 더 심각하고 크다. 도박 중독자 양산을 막기 위해선 어느 정도 국부 유출은 감수해야 한다. 외국까지 나가 도박을 할 정도면 돈이 있는 계층이라고 봐야 한다. 지금처럼 서민이 중독에 빠지는 것은 막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합법 사행산업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어떻게 보나.

김규호="순기능은 인정한다. 주 5일제로 여유 시간이 늘어났는데 마땅한 레저가 없다. 그러나 레저나 오락의 차원을 넘어 중독에 빠지고, 사회적 병폐를 일으키는 것은 막아야 한다. 한 명의 중독자가 나오면 가족과 친구·친지 등 100명을 괴롭힌다. 국내 도박중독자가 350만 명으로 추정된다는 점에서 전국민이 도박 피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서천범=“국민의 스트레스를 풀어 주고, 기금 조성과 관련 산업 진흥 같은 긍정적 역할을 한다. 이런 순기능은 살리고, 역기능은 줄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사행산업 관련자들이 반성해야 한다. 인적 쇄신과 구조조정을 통해 방만한 경영을 개혁해야 한다. 또 자체적으로 사행산업을 건전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할 때다.”

-사감위 개선 방향은.

김규호=“현행 사감위 법에는 불법 영역을 단속할 권한이 없다. 또 관련 부처에 권고만 할 수 있는데, 해당 부처가 무시하면 제재할 방법이 없다. 독립적 재정과 인력을 갖추는 한편 사행산업 전반에 대한 실질적인 통제권을 갖도록 해야 한다.”
서천범=“불법 도박 시장규모가 54조원으로 합법 사행산업의 4배 수준이다. 법 개정을 통해 불법 도박을 사감위 규제 대상에 포함시키도록 해야 한다는 데 동감한다. 사감위 자신도 불법 도박을 어떻게 단속할 수 있을지 엄두가 안 나는 것 같다.”

권석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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