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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불장군’ 강만수 ‘독립투사’ 이성태 잦은 불협화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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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호 06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 원론을 들고 나와 어쩌겠다는 것이오.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글로벌 금융 위기 헤쳐나갈 경제 사령탑 4인의 팀워크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에 참석 중이던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13일 오후 기자들에게 짜증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전날 자신이 제안한 은행에 대한 정부 직접 지원, 선진국 통화 스와프에 개도국 참여 등의 방안에 대해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부정적 뉘앙스의 발언을 했다는 말을 듣고 발끈한 것이다.

파장이 일자 한국은행은 “진의가 왜곡됐다”며 곧바로 해명 자료를 냈다. 강 장관도 귀국 다음날인 17일 기자회견에서 “국제 신인도를 감안해 이견을 부풀리지 말아 달라”고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시각차가 크고, 상호 불신의 골이 생각보다 깊다는 얘기가 동행 취재한 기자들 사이에서 계속 흘러나왔다.
 
강만수의 독주, 시큰둥한 이성태
지난달 중순 한승수 국무총리가 재정부 고위 관료를 통해 이 총재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언론에 보도됐다. 이 총재가 사사건건 정부와 다른 주장을 펴 시장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국무총리실 설명은 좀 다르다. 김왕기 공보실장의 말.

“이 총재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두 사람 모두에 대한 얘기였다. 둘이 서로 충분히 토론한 뒤 언론에 얘기해야지 자꾸 다른 말을 해 혼란을 주면 되겠느냐는 뜻이었다. 이를 마치 한국은행 총재만 겨냥한 것처럼 재정부 간부가 잘못 전했다.”

하지만 누구 잘못이든 간에 외환정책의 두 축인 강 장관과 이 총재의 부조화를 정부 내에서조차 문제로 보고 있다는 사실은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강 장관은 이명박 대통령과 30년 가까이 교분을 쌓아온 측근이다. 반면 이 총재는 자신을 고교 시절부터 존경해 왔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발탁한 경우다. 노 전 대통령은 이 총재의 부산상고 2년 후배다.

한은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생각은 극과 극이다. 올 초 인수위원 시절 강 장관이 “한은은 책임지지 않는 구조” “한은도 정부 조직의 일부”라는 말을 거침없이 하자 이 총재가 공개 반박하기도 했다. 1997년 한은법 개정을 둘러싸고 두 기관이 충돌했을 때 두 사람은 재경원 차관과 한은 기획부장으로 맞선 인연이 있다.

정권 출범 후 ‘폭탄주 회동’까지 하며 화해를 시도했음에도 쉽게 좁혀지지 않은 두 사람의 ‘거리’는 두 기관 간 협조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최근 분위기를 알아보기 위해 청와대와 재정부 관계자들과 광범위하게 접촉했다.

-두 사람의 호흡이 잘 맞나.
“지금 같은 전시상황에서는 호흡을 따질 계제가 아니다. 하지만 평시라면 솔직히 맞는 코드는 아니다. 강 장관은 ‘나를 따르라’는 식의 캐릭터고, 이 총재는 한국은행 독립을 지고지순(至高至順)의 가치로 생각하는 독립투사 같은 사람이다. 맞을 수가 있겠나.”(청와대 A씨)

-외환 업무는 강 장관이 최종 책임자 아닌가.
“물론 그렇지만 법에도 한은과 협의하도록 돼 있다. 어떤 문제를 풀기 위해 실무 차원에서 제안하면 한은은 색안경부터 끼고 본다. 자신들이 검토하던 것도 우리가 하자고 하면 그냥 덮어 버릴 정도다.”(재정부 B씨)

글로벌 금융위기가 심화하면서 강 장관에 대한 이 대통령의 의존도는 더욱 높아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경제 컨트롤 타워가 없다는 안팎의 지적은 되레 경제팀의 대표 선장 격인 강 장관의 행보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환율이 요동치기 시작한 9월 이후 강 장관은 일주일에 두세 차례씩 청와대에 들어간다. 이 대통령은 수시로 그를 휴대전화로 찾기도 한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날인 10일 경제 현안을 보고하러 온 강 장관에게 이 대통령은 “실질적 경제부총리로 생각하고 움직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강 장관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촛불이 타오르던 6월 인적 쇄신을 놓고 장고에 빠진 이 대통령은 그의 경질을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물가가 치솟고 환율 정책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자 측근들에게 강 장관에 대한 평가를 집중적으로 들었다. 이때 한나라당 임태희 정책위의장 등이 강 장관을 적극 옹호하며 이 대통령의 의구심을 풀어 줬다고 한다. 임 의장은 강 장관이 재무부 이재국장과 국제금융국장으로 재직할 무렵 최중경 주필리핀 대사, 김석동 전 재경부 제1차관, 주우식 삼성전자 전무와 함께 가장 아끼던 사무관 4인방 중 한 명이었다.

강 장관이 인위적으로 고환율 정책을 썼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하지만 환율에 관한 그의 일련의 발언들이 외환 책임자의 발언으로서는 적절치 못했다는 점은 모두가 인정한다.

“환율은 수급으로 풀어야 한다” “지나친 원화 고평가를 막기 위해 해외 투자 활성화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식의 역대 경제부총리들의 환율 발언 교과서는 10년 야인 생활을 이겨 내고 금의환향한 강 장관에게는 거추장스러운 듯 보였다.

취임 첫날 저녁 자신의 집무실로 몰려온 기자들에게 그는 “85년 플라자 합의를 보고 환율은 시장에 맡기는 게 아니라고 느꼈다” “환율은 주권을 방어하는 수단이고 일종의 전쟁이다”는 등의 말을 거침없이 쏟아냈고, 이는 두고두고 그의 발목을 잡았다.

어눌한 말투에도 불구하고 강 장관은 금융과 세제 업무에 두루 정통한, 경력 관리가 보기 드물게 잘된 경제관료다. 경남고 선배인 김영삼 전 대통령도 그를 많이 챙겼다. 야인 시절 소망교회 2층 구석 자리에서 수년간 헌금위원으로 묵묵히 봉사할 만큼 성실하고 자기 관리도 철저하다. “경제와 관련한 욕은 대통령 대신 내가 다 먹겠다”는 식의 강한 충성심은 이 대통령을 사로잡는 덕목이다.

지난해 대선 때 캠프 내부에서는 이 대통령이 다른 참모들과 달리 예순이 넘은 강 장관에게는 하대하듯 지시하는 것을 보고 친밀도를 짐작했다고 한다. 국회 기획재경위원장에 유력했던 이한구 의원이 막판 예결위원장으로 바뀐 배경에는 그를 껄끄러워하는 강 장관의 로비가 작용했다는 소문이 정가에 파다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시장의 평가가 부정적인 것은 구시대의 독불장군식 업무 스타일과 관련이 많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강 장관은 박학다식이 장점이긴 하지만 사안마다 자기 생각이 너무 강하다”고 평가했다.

실·국장들이 보고할 때 “그…그게 아니고”라고 강 장관이 입을 열면 바로 보고를 멈추고 그의 눈치를 살핀다고 한다. 지난달 재경부 세제실의 연간 최대 행사인 2008년 세제 개편안 발표를 코앞에 두고 자신의 감세 드라이브에 이견을 보인 실무 총책임자 세제실장을 전격 교체한 강 장관이다.

좌충우돌하는 성격과 이명박 대선 캠프 출신이라는 태생적 한계는 그를 역대 어느 경제장관보다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로 부각시켰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이 경제 상황을 봐 연말께 국면 전환용으로 강 장관을 정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반대로 경제위기가 심화되면 오히려 그를 유임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전광우 역할 보완하는 이창용
금융계가 가장 불만을 터뜨리고 있는 부분이 금융위의 소극적 태도다. 금융정책의 총괄 부처를 자처하면서도 금융위는 지난 7월 불거진 금융위기설에 “아무 문제가 없다”며 안이하게 대처하다 9월 들어 상황이 나빠지자 허둥지둥댔다. 4월부터 불거진 환헤지 상품 키코(KIKO) 문제에 대해서는 “사적 계약”이라며 뒷짐을 지다가 뒤늦게 움직였다.

지난 6일 강 장관이 은행장 간담회를 소집한다는 얘기를 듣고 부랴부랴 재정부에 부탁해 전광우 금융위원장도 공동 소집하는 모양새를 취한 것을 놓고는 “자기 몫도 못 챙기느냐”는 비아냥이 나왔다. 10년 전 외환위기 때 이헌재 전 금감위원장 등이 매스컴의 각광을 받으며 위기 극복을 주도했음을 감안하면 “도대체 전 위원장은 어디 있느냐”는 말이 나올 법한 상황이다.

금융위와 금감원의 수장이 분리됐고, 국제금융 업무는 재정부가 관장하고 있는 한계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전 위원장의 캐릭터와 경험 부족을 꼬집는 사람이 더 많다.

민간 출신인 그가 정책 경험이 없어 현안 파악이 늦고, 욕을 먹더라도 팔을 걷어붙이고 문제를 풀어 가겠다는 자세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내실보다 외형에 치우쳐 언론 인터뷰와 강연 등 외부 행사에 힘을 쏟는다는 얘기가 조직 내부에서도 계속 흘러나온다. 반면 서울대 교수 출신인 이창용 부위원장은 해박한 경제지식과 순발력으로 내부 관료들을 장악하며 실무에 약한 전 위원장의 역할을 보완하고 있다고 한다.

청와대 박병원 경제수석도 개성 강한 경제팀의 조율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상황이지만 역할은 당초 예상보다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박 수석은 재경부 1차관 시절 당시 정권 실세들이 주장하는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에 반대했던 뚝심 있는 인물이다. 때문에 지난 6월 박 수석이 등장하자 청와대 경제수석실의 강화를 예상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뚜렷한 주관에도 불구하고 아직 특별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서울대 법대 7년 선배에 친분도 그다지 없는 성격 강한 강 장관을 의식하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들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 수석이 초기부터 강 장관이 주도하는 재정·금융 분야보다 서비스와 중소기업 대책에 더 많이 치중해 특화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조직 축소로 금융비서관이 경제금융비서관으로 통합된 점도 그가 현안에서 밀리는 이유다. 그럼에도 앞으로 경제팀이 개편될 경우 지금보다 힘이 실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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