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now] 프랑스 국가 연주 때 야유 … 좌·우파 정치권 갈등 번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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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4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생드니 경기장. 프랑스와 튀니지의 국가대표 간 축구경기에 앞서 프랑스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가 연주될 때였다. 갑자기 관중석에서 휘파람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한두 명이 아니라 수백 명이 야유와 함께 휘파람을 불어댔다. 늘 진지한 표정으로 국가를 따라 부르는 레몽 도메네크 감독의 당황스러운 얼굴이 카메라에 잡혔다. 결국 국가 연주는 엉망이 되고 말았다.

작은 소동 같지만 불똥은 이내 정치판으로 옮겨 붙었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프랑스 축구협회장을 엘리제궁으로 소환, 소동의 경위를 따져 물었다. 프랑수아 피용 총리도 “이런 사고가 재발할 경우 경기를 즉각 취소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사르코지는 이번 사건이 북아프리카 출신 이민 청년들의 계획적·조직적 행위라는 점에서 흥분하고 있다. 그는 내무장관 시절부터 강·절도 사건의 단골손님인 파리 북쪽 빈민촌 내 북아프리카 청년들과 충돌했다. 범죄자에게 관용은 없다고 선언한 ‘톨레랑스 제로’ 역시 이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이번에도 사회 불만세력인 이들이 공공연하게 ‘국가’를 뒤흔드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정부의 대응은 여론을 의식한 것이기도 하다. 2001년 파리에서 열린 프랑스와 알제리 간의 경기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리오넬 조스팽 총리가 경기장에 있었지만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아 여론의 질타를 받았었다. 이번 경기 직후 설문조사에서도 프랑스 국민의 80%는 ‘충격적’이라고 답했다. 정부가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좌파 정치인들은 “정부의 과민 반응”이라고 비난했다. 마리 조르주 뷔페 공산당 당수는 “이번 사건은 이민자들의 분노와 불만의 표현”이라면서 “경기 취소 운운하기 전에 그들의 주장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공격했다. 뷔페는 2001년 프랑스와 알제리전이 열리던 당시 체육부 장관이었다.

라 마르세예즈는 이 전에도 여러 번 논란을 빚었다. 18세기 말 전장에서 군인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만들어진 이 노래는 ‘조국의 아들·딸아 일어나라. … 적군의 피가 밭고랑에 넘쳐 흐를 때까지’ 등 가사가 매우 호전적이다. 때문에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출신 축구 선수 지네딘 지단 등은 “라 마르세예즈를 들을 때마다 섬뜩한 마음이 든다”며 노래 따라하기를 거부해 왔다. 지단의 이런 행동으로 라 마르세예즈는 북아프리카계에 비아냥의 대상이 됐고, 우파에선 이를 다시 비난하는 식이었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도 좌·우파 정치인들이 가사를 두고 설전을 벌였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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