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훈, 서른 즈음에‘인생 역전 드라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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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런 일이 어떻게 내게 있을 수 있어. 드라마에서나 보아왔던 그런 얘기가~’.

정성훈(29·부산 아이파크·사진)의 휴대전화 컬러링은 김건모의 노래 ‘드라마’다. 15일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아랍에미리트(UAE)전에서 축구 대표팀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른 스트라이커 정성훈은 노래처럼 극적인 ‘인생 역전’을 경험하고 있다.

정성훈은 부산의 주전 공격수지만 얼마 전까지도 생소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UAE전에서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며 4-1 승리의 디딤돌을 놓은 뒤 ‘벼락 스타’가 됐다. 이근호가 2골, 박지성이 1골·1어시스트를 기록했지만 축구 전문가들은 정성훈에 대한 찬사를 쏟아내고 있다. 허정무 감독도 경기 후 “잘했다. 다음에 골만 넣으면 되겠다”라며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는 상대 수비수가 공을 걷어내려 오버헤드킥을 하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공을 따내기 위해 머리부터 들이밀었다. “눈에 보였지만 제가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죠.” 그의 이마엔 축구화에 찍힌 멍 자국이 남았다. 허 감독이 조재진·박주영 대신 그를 뽑은 것은 그런 투혼 때문이었다.

서른을 코앞에 두고 난생 처음 태극 유니폼을 입은 그는 “정말 정말 국가대표가 되고 싶었다”라며 감격했다. 가슴속에 쌓인 한이 많았기 때문이다.

1999년 나이지리아 세계청소년 선수권을 앞두고 그는 대표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이동국·김은중·설기현에 밀려 긴 우회로로 접어들었다. 2001년 히딩크가 부임한 뒤에는 대표팀 후보군으로 선발됐지만 서류 전형을 통과하지 못했다.

2002년 K-리그 울산 현대에 입단한 뒤에도 그는 ‘그저 그런’ 선수였다. 늘 가능성만 있었을 뿐 기량을 꽃피우지 못한 그의 이력은 점점 누추해졌다. 7시즌 동안 울산-대전-부산 등 세 팀을 전전했다.

지난해 대전 사령탑으로 부임한 김호 감독은 그에게 “중앙 수비수로 변신하라”고 주문했다. 수비수 출신인 김 감독은 정성훈에게서 야프 스탐처럼 될 가능성을 본 것이다. 스탐은 9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3관왕을 이끈 철벽 수비수로 네덜란드 대표로도 오랫동안 활약했다. 1m90㎝로 정성훈과 키도 똑같다.

정성훈은 고민했지만 “아직 공격수로서 꿈을 버릴 수 없다”며 지난 시즌이 끝나자 미련 없이 부산으로 옮겼다. 부산에서 만난 황선홍 감독은 더 없이 좋은 멘토였다. 프로에 와서 처음 만난 공격수 출신 감독이었다. 정성훈은 “얼마 전 감독님이 ‘세트 피스에서 상대 수비가 공을 보는 순간이 있다. 그때를 노려 움직이면 수비를 따돌릴 수 있다’고 알려줬다. 실제 경기에서 깜짝 놀랄 만큼 효과를 봤다”고 말했다. UAE전을 마친 후에도 황 감독은 “폭넓게 움직이는 것은 좋지만 골을 넣을 수 있는 위치에서 벗어난 경우도 있었다”고 조언했다.

18일엔 K-리그에서 대표팀 터줏대감이었던 이동국이 버티고 있는 성남 일화와 싸운다. 이번엔 팬들의 관심이 이동국이 아니라 정성훈에게 맞춰져 있다.

이해준 기자

정성훈은 ▶소속:부산 아이파크 ▶생년월일:1979년 7월 4일 ▶체격:1m90㎝·84㎏ ▶출신교:마산 합성초-김해중-마산 창신고-경희대 ▶A매치 데뷔:10월 11일 우즈베키스탄전

▶전 소속:울산 현대(2002∼2003년), 대전 시티즌(2004∼2007년) ▶K-리그 기록:129경기 24골·8도움(올 시즌 27경기 8골·3도움) ▶가족 관계:박연희(28)씨와 아들 원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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