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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Review] 비너스도 피하지 못할 미국발 성형 칼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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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비너스의 유혹 - 성형수술의 역사

엘리자베스 하이켄 지음, 권복규·정진영 옮김
문학과지성사, 487쪽, 2만원

 1960년대 미국 청년문화 아이콘의 하나였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이야기로 이 방대한 연구서를 정리해보자. 당시 대중은 스트라이샌드의 연기와 노래 실력보다 커다란 코에 관심이 더 많았다. 63년부터 이듬해까지 그를 다룬 잡지 기사 20건 가운데 큰 코 이야기를 빼놓은 것은 드물었다. 뉴요커는 대놓고 ‘매부리코’라고 표현했다. 라이프는 ‘마녀의 코’라고 했다. 이와 함께 그가 코에 손댈 생각이 전혀 없다는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대중은 그가 코를 깎지 않았다는 대담함에 더욱 감탄했던 것이다.

 의사학(history of medicine) 교수인 지은이는 당시 미국인들이 이상적으로 여겼던 미의 조건 가운데 하나가 작은 코였다고 지적한다. 재키 케네디처럼 작고 약간 들린 코 말이다. 이런 코를 만들기 위해 유대계나 이탈리아계 10대 소녀들은 고교 졸업선물로 성형수술을 받곤 했다. 일종의 성인식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미국에서 16~19세 소녀들을 중심으로 매년 3만~6만 건의 성형수술이 이뤄졌다. 이들은 재키의 코를 선망하며 코뼈를 좁히고, 코끝을 세모 꼴로 깎고, 콧구멍 위로 두 개의 볼록한 부분을 만들어 넣는 수술을 기꺼이 받았다.

라이프지는 64년 “스트라이샌드에 고무된 사람들이 그처럼 큰 코를 가지려고 성형외과에 줄을 설지도 모른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스트라이샌드 효과인지, 한동안 코 성형이 줄어들기는 했다. 하지만, 곧 그레이스 켈리 같은 코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스트라이샌드라면 그런 얼굴이어도 되지만, 다른 사람이 그래도 될까”라는 넋두리 속에서 말이다.

지은이의 지적대로 미국에서 성형수술은 하나의 대중문화이자 레저다. 딸을 낳는 순간, 수술비 적금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 엄마는 자신이 코 성형수술을 했던 병원으로 23년 뒤 딸을 데려간다. 안경으로 시력을 교정하듯, 큰 코도 바로잡아줘야 한다고 믿고서다.

현대 미국 문화의 기준으로 볼 때, 작은 가슴, 큰 코(백인의 기준), 그리고 주름살은 성형수술로 고쳐야할 ‘질환’이다. 성형수술은 외모 결함으로 인한 불이익으로부터 남녀를 구해주는 구세주다. 지은이는 현대의 연애와 결혼시장에서 여성의 외모에 지폐와 같은 가치가 부여된다는 사실이 미국을 ‘성형 권하는 사회’로 만든 한 동력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미국 문화는 아시아로도 퍼졌다. 미국 성형외과 의사 도널드 모이니한은 50년대 초 쌍꺼풀 수술과 코 수술을 받고자 그를 찾아온 한국여성 문씨의 일화를 자서전에 남겼다. 문씨는 한국에서 만나 결혼한 남편이 미국에 온 뒤로 자신을 창피해 하기 시작하자 고민에 빠졌다. 모이니한은 문씨의 문제가 매부리코로 고민하는 유대인 여성과 다르지 않다고 판단했다. 수술 결과 문씨와 그의 ‘비신사적인’ 남편 모두가 만족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문씨의 남편이 수술과 상관없이 부인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성형이 만연한 배경이다.

마이애미 출신으로 54년 한국에 근무했던 랠프 밀러드는 동양적인 눈을 서양인처럼 고쳐달라는 요구를 받았지만 관련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직접 시술법을 개발해 55년 학회지에 실었다. 그런 그를 일부에서 ‘동양인종을 서구화하는 인종 개선을 꾀하고 있다’라고 비난했다. 밀러드는 분개했다. 이미 서울·홍콩·도쿄·마닐라의 아시아 의사들이 이런 종류의 시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쌍꺼풀을 만들어 달라는 환자의 요구에 응한 것은 밀러드에겐 의사로서 책무를 다한 것일 뿐이었다. 사회 문화적인 의미를 고민하기보다 의학적인 해결방안을 찾는 데 중점을 두는 의학교육의 결과라는 게 지은이의 지적이다.

‘성형괴물’ 마이클 잭슨을 한번 살펴보자. 표백된 피부, 조각된 턱선, 높게 세운 광대뼈, 작고 뾰족한 코끝, 갈라진 턱, 짙은 눈가 라인. 성형기술의 발전, 모험심, 엄청난 돈, 그리고 그 돈을 지급하는 사람의 욕망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백인처럼 보이려고 한 것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흑인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다는 욕망 말이다. 잭슨의 모습에 미국인은 놀랐지만, 성형수술을 ‘자기계발’의 하나로 받아들이기는 매한가지였다.

잭슨 사례는 외모에 대한 앵글로색슨 중심주의를 보여준다. 성형수술은 외국인이나 이방인임을 알려주는 코를 앵글로색슨처럼 보이도록 손봐주면서 급속히 발전했다. 그러다 보니 인종적·민족적 특징을 제거하는 것이 미국 성형수술의 특징이 됐다는 지적이다.

지은이는 성형외과의 역사를 씨줄로, 성형수술과 관련한 미국 사회·문화사를 날줄로 엮었다. 매독으로 일그러지거나 1차대전 때 다친 병사들의 안면을 고쳐주는 재건의학이 미용의학으로 발전해나가고, 성형외과라는 이름으로 독립하면서 나름대로 규범을 만들고 기술을 개척해 나가는 의학사가 이 책의 가로축이다. 성형이 어떻게 미국 문화의 일부가 되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가 세로축이다. 이 둘이 합쳐져 ‘성형이 당연한 미국사회’의 배경을 설명한다. ‘성형이 자연스러운 한국사회’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원제 『Venus envy-A History of Cosmetic Surgery』.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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