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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로가는길>경남 남해 금산 보리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금산(錦山)의 원래 산이름은 보광산(普光山)이었다고 한다.원효스님이 신라 문무왕 3년(663년)에 보광사를 창건하면서 그렇게 이름붙였던 것이다.그런 보광산이 금산으로 바뀐 것은 이렇단다. 이성계가 조선의 개국을 앞두고 보광산에서 1백일간 관음기도를 올렸는데,조선이 자신의 뜻대로 개국되자 이성계는 그 보답으로 산을 온통 비단으로 덮겠다고 한데서 산이름이 바뀌었다는전설이다.귀한 비단이지만 산이라도 덮겠다는 태조 이성 계의 호방한 성격과 보은(報恩)의 마음이 결합된 이야기다.
그러나 금산은 이름 그대로 아름다운 산이다.마치 고운 비단 치마를 입고 있는 것처럼 산이 수려하고 눈부시게 하는 비경이 곳곳에 숨어있는 것이다.금산의 제1경인 쌍홍문을 비롯,무려 38경이 해발 6백81의 조그마한 산에 자리하고 있 음이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보광사 부속암자로 원효스님에 의해 시창된 보리암은 바로 그런 비경들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거대한 바위들이 서로 엉켜있는 사이사이에는 낙락장송과 산죽들이 청청하고,산 밑에 보이는 초승달 모양의 상주해수욕장에서 부터 시작되는푸른 바다가 바로 한려수도다.
관음기도를 하러 왔다는 한 객승이 안내를 해준다.
『보리암은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처중 하나입니다.요즘은 국립공원 안에 있어 관광객들이 소란스럽게 붐비지만 예전에는 정말 이곳에서 잠만 자도 도(道)가 저절로 닦여졌다고 하는 성지였습니다.』 객승의 말대로 휴일이라 그런지 산길마저 북적거린다.관광객들이 새떼처럼 재잘대면서 이리저리 몰려다니고 있는 것이다.
특히 기도처인 보광전(普光殿)에는 참배를 하는 신도와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어 경봉스님이 쓴 편액의 선필을 감상할 공간이 없다.작품이란 자동카메라로 피사체를 찍듯이 보는 것이 아니라 각도와 거리를 달리하면서 감상하는 맛이 다르지 않은가.보리암의 편액도 역시 경봉스님의 선필이지만 사람들에게 밀려 담 너머로 커닝하듯 훔쳐볼 뿐이다.
최근에 조성된 관세음보살상 앞에 이르러서야 암자에 왔다는 여유가 생긴다.암자 전체의 풍광을 조망할 수 있고,한려수도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땀을 식힐 수 있음이다.
『이 삼층 석탑이 바로 불가사의한 곳이지요.김수로왕비 허태후가 인도 월지국에서 가져온 불사리(佛舍利)를 원효스님이 봉안한탑인데,명당중 명당이라고 합니다.』 나그네는 풍수를 모르므로 명당이 어떤 곳인지 모르지만 이곳에 나침반을 두면 지침이 동서남북을 정확히 가리키지 못하고 헛돌기만 한다는 것이다.이윽고 나그네는 금산의 풍광을 천년을 하루같이 초병처럼 지켜온 석탑에경의를 표하며 하산한 다.
※남해대교에서 암자 주차장까지는 32㎞로 승용차로 50분정도걸린다.거기에서 다시 암자까지는 8백 거리다.
글:정찬주〈소설가〉 사진:김홍희〈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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