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쓰는가정문화>16.가정놀이를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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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우스갯 소리중에 달팽이 이야기가 있다.TV에 인기그룹 패닉이『달팽이』란 노래를 부르려 등장하자 딸이 기뻐 날뛰며 신문을 보던 아빠에게 『달팽이 너무 좋아요.아빠는 어때요』하자 아버지왈,『아니지,아무래도 술안주로는 비싼 달팽이보 다 골뱅이가 최고지』라고 했다는 것.웃고 지나갈 얘기지만 부녀간의 문화적 차이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일면이다.그리고 이는 가족간의 대화가 부족한 가운데 나타나는 흔한 현상중의 하나다.
가족문제 전문가들은 가정의 대화가 부족한 원인은 곧 가정의 놀이문화 부재에서 기인한다는데 의견을 함께 한다.
주부 김선미(金仙美.43.서울강북구미아동)씨는 대학생과 고2년인 아들 형제를 두고 있다.대학생이 되자 집안보다 친구사귀기에 더 열을 올리는 큰아들과 학교에서 밤12시가 돼야 들어오는작은 아들.모처럼 휴일에 시간이 나더라도 책만 읽는 남편탓에 가족외출도 힘들 정도다.김씨는 『각기 바쁜 가족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도 서먹서먹하기까지 하다』며 고민을 털어놓는다.
성남에 사는 주부 김현옥(金賢玉.32)씨는 요즘 남편에 대한불만이 높다.바쁘다는 핑계로 여섯살난 아들과 잘 놀아주지도 않는데다 초상집에 간다 하면 밤을 새운다.지난 추석때 시집에 가서도 남자 친척들끼리 포커를 하는 내내 김씨는 술상이며 밤참준비만 해야 했을 뿐이다.
『장유유서.부부유별 등을 강조한 전통 가족가치관은 온 가족이같이 어울린다는 것을 어색하게 만든다』며 『게다가 최근 남편의직장내 경쟁,청소년자녀의 입시경쟁등이 겹쳐 가족놀이 문화의 장이 마련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이화여대 함인희(咸仁姬.
37.사회학과)교수는 진단한다.
이런 우리 현실속에서 최근 정부와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놀이문화 살리기에 대한 프로그램이 마련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오는 27일부터 각 사회단체들이 모여 「가족문화운동 선포식」을 갖고 가족놀이문화 활성화에 대한 심포지엄등을 개최한다.또 YMCA는 내년 2월까지 「가족놀이문화 프로그램 모델뱅크」를 만들어 가족놀이의 중요성을 일깨워 나갈 계획이다.
가족놀이문화 살리기를 위해 보다 희망적인 것은 신세대 부부를중심으로 가족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독특한 놀이문화를 창조해가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
주부 최은미(崔恩美.33.서울서초구잠원동)씨는 6년전 강원도양구에서 남편이 군의관으로 있던 시절 이웃들과 지금도 만난다.
물론 이 모임에선 끼리끼리의 놀이는 사절이다.
『리더의 지시에 따라 몸짓으로 영화제목맞히기,그림으로 노래제목 맞히기,자녀노래자랑대회등으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어만나는 일이 즐겁다』는 최씨는 『이번엔 한집씩 가정비밀 털어놓기 게임을 했는데 한 아내가 자기보다 야한 팬티 색을 좋아하는남편 때문에 골치라고 대답해 한참 웃었다』고.
YMCA 박태범(朴泰範.34)간사는 『가족문화를 살리는 길은놀이문화를 살리는 것에서 출발하며 대가족이든 핵가족이든 함께 즐길 수 있는 촉매(놀이)를 찾아야 한다』며 『함께시장보기.같이 설거지하기등 생활속에서 놀이문화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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