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칼럼>對北정책의 겉과 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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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몇주전 중국에서 열린 한.중간의 한 국제포럼에 참석할 기회가있었다.마침 북한잠수함 침투사건 직후여서 한국측은 당연히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했었다.그런데 항상 사회주의국가들이 그렇듯이 회의에 나온 중국측은 이 문제에 대해 입을 맞춰놓고 있었다. 『분단국가니 만큼 분쟁이 없을 수 없다.잠수함 침투사건은그런 사건중 하나일 뿐이다.그러나 그것은 사소한 마찰일 따름이며 결코 그것으로 인해 심각한 사태는 일어나지 않는다.그러므로한국이 참아야 한다』는 것이 중국측의 논리였다.
북한에 거의 유일하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그들의 역할에대해서도 그들은 미리 해답을 만들어두고 있었다.『중국은 내정간섭을 하지 않는다.그러므로 북한에 대해서도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북한에 대해 잘못 충고했다가는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는 것이다.
토론은 결국 끝없는 쳇바퀴 돌기였다.중국측이 이 문제에 대해보다 적극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야 하며 최소한 유감표시는 했어야한다는 것이 한국쪽 주장이었다.그러나 그들은 내정불간섭 입장을조금도 굽히지 않았고 한국측이 지나치게 정치 적이라고 비판했다.그들은 북한의 조기붕괴론을 거부했고 잠수함 사건을 「사소한 마찰」이상으로 보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은 비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북한측의 행위가 유감스러운것이며 이에 대한 한국측의 입장은 참고자료를 통해 중국내에서 알만한 사람에게는 전부 배포하고 있다고 해명하면서 한국측의 이해를 구했다.그러나 그런 중에도 일관되게 흐르는 기조는 한반도문제에 대해서는 점진적인 접근방식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물이 끊어지고 산이 막힌듯 해도 다가가 보면 길이 있고 마을이보이듯」 한반도 문제를 너무 막다른 곳으로 몰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들도 잠수함 사건을 불만스럽게 여기고 있었다.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비공식적」이다.이런 입장에서 보면 한국측 주장은 지나치게 단견적으로 비쳐지는듯 했다.
문제는 이와 같은 상황인식이 중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서울에서 만난 일본 외교관 역시 시각의 차이는 보이지만비슷한 분석을 하고 있었다.한반도 상황은 결코 위기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뿐만 아니라 북한문제에 대해 아 무런 정책적 수단이 없는 한국정부가 그나마 그중에서 유일하게 발언권을 행사하고 있는 경수로문제에 대해 1~2년 보류하겠다고 한다면 한국정부는 대북문제에 다른 어떤 수단을 가지고 있느냐고 되묻는다.
그는 한국을 최근 잇따라 방문하고 있는 미국의 고위관리들이 한국의 언론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는 점도 알고 있었다.
의도적으로 강경분위기로 몰아가는 것이 언론이라는 것이다.그러나그들이 언론의 입장을 지적하는 것은 뒤집어 보면 결국 우리 정부의 대북(對北)강경론에 대한 불만의 간접적인 표현일 뿐이다.
중국은 비공식적으로 한국측을 지지하지만 공식적으로는 불간섭태도를 견지한다.미국과 일본은 공식적으로는 한국지지지만 비공식적으로는 한국정부에 불만이다.
이처럼 대북문제에서 우리 정부의 현상인식이 다른 주변국의 그것과 너무 큰 격차를 보인다면 정부의 대북강경책은 겉돌 수밖에없게 될 것이 뻔하다.잠수함이 내려오고,미사일 발사실험이 예고되고,남반부에서 비정규전을 일으키는 준비를 하고 있다는 정황들이 잡힌다고 정부측이 주장하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주변국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정부의 대북강성정책이 자칫 국제적으로유효하지 못한 감성적(感性的)강경으로 비칠 수도 있다.
정부도 외길의 대결정책만을 고수할만큼 선택의 폭이 좁다고 보지는 않는다.하지만 적어도 북한문제에 가장 유효한 대응수단을 보유하기 위해선 겉은 어떻든 배후에서 주변국들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북한정세에 대한 정부의 충실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인식의 갭을 좁히는 대북 이면(裏面)정책이 시급하다.
(편집국장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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