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프라를세우자>4.97세계공연예술축제 서울문화거리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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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대학로에는 공연장이 있다.크게는 6백석 규모의 문예회관 대극장이 있고 작게는 1백석 내외의 소극장이 40여개 있다.누구나다 아는 사실을 왜 꺼내느냐고 묻는다면 다시 이렇게 말해보자.
공연장 몇개가 모여있다고 연극의 거리,무용의 거 리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내년 8월30일부터 한달동안 서울 대학로에서는 해외 초청작 30여편을 비롯해 1백편 가까운 공연이 벌어지는 「97 세계공연예술축제」가 열린다.
이 행사가 성공리에 개최되려면각각의 공연이 단절되지 않고 연결될 수 있는 유기적 연결망인 문화인프라가 만들어져야 한다.
연극협회(이사장 정진수)를 포함해 한국예총(회장 신영균)은 「97 세계공연예술축제」 기간중 세계인들에게 서울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한 서울 문화거리 개발안을 지난 16일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제20회 서울연극제 폐막식에서 제시했 다.
「2002 문화월드컵 개회 대비,서울 예술의 거리 조성을 위한 문화특구 추진안」과 함께 소개된 이 개발안은 서울 역사문화가로 세우기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건축가 김석철(53.아키반 대표)씨의 아이디어가 주를 이루고 있다.종로구 와 서울시.
문체부등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고 이 과정에서 일부 계획의 수정이 불가피하겠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이런 발상과 추진력의 왕성함 아닐까.
여기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대학로를 창경궁과 종묘등 서울의 역사공간과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이 계획에 따르면 소극장 밀집지역에서 서울대의대를 관통해 창경궁을 거쳐 운현궁까지이어지는 「세계 공연예술제 거리」가 만들어진다.
현재 대학로는 도로를 중심으로 양쪽길에 모두 문화현장이 있는것이 아니라 낙산쪽 한 방향만으로 치우쳐진 기형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건너편에 서울대의대 건물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대학로에서 5분만 걸으면 서울의 정체성(正體性)을 말해주는 고궁과 바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모르는 까닭은 바로 여기있다. 김씨는 양쪽 거리를 연결하는 육교를 세우는 방안을 마련했다.단순히 길을 건너기 위한 육교가 아니라 자동차로 점령된 도로 위에 공중 광장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이 공간에 공연 매표소나 카페등을 내고 축제본부로도 사용한다.
이 축제본부를 넘어 서울대의대 건물 사이의 산책로를 걸어 넘어가면 바로 창경궁과 연결된다.
김씨는 고궁을 공연의 무대로 적극 활용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대학로에서 운현궁까지 하나의 축제거리로 연결되려면 단순히 산책길을 만드는 것외에 길 중간중간에 공연장이 들어서야 하고 그장소로 창경궁이 적절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아비뇽 연극제가 과거 교황청 중정의 야외공연장을 주공연장으로 사용하는 것처럼 창경궁 중정에 가설무대를 설치할수 있다. 창경궁뿐 아니라 현재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는 한국화약 소유의 땅과 현대빌딩 뒤편 자리에도 건물주와 협의해 가설극장을 세우는 것으로 예정하고 있다.
가설극장은 이름처럼 「가설」이기 때문에 빠른 시간에 극장을 만들수 있고 또 언제라도 옮길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베르디의 『라트라비아타』가 초연된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유서깊은 오페라극장인 라 페니체 극장은 지난 1월 불에 타 없어진 지 4개월만에 1천5백석 가설무대를 세우고 공연을 계속하고 있다.무대장치도 허술하고 냉.난방도 갖추어지지 않았지만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극장을 찾는다고 한다.이 예에서도 알수 있듯 좋은 극장의 모든 조건을 다 갖추지 않아도 얼 마든지 공연장으로 활용할수 있다.
대학로는 수치상으로는 공연장이 많지만 한꺼풀만 벗겨보면 한낱허상일뿐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수 있다.건축 단계부터 공연장 용도로 만들어진 극장은 학전과 그린.두레등 서너개뿐이고 대부분은사무실 건물을 용도 변경해 사용하고 있다.공연 장으로 제대로 기능하려면 높이가 중요한데 천장이 낮은 일반 사무실 높이에서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현실에서 세계공연예술축제 개최를 위한 1천석 이상 대규모 공연장은 가설무대를 통해서만 마련될수 있다.이번 서울 문화거리 개발안은 반쪽 기능의 대학로를 균형잡힌 문화거리로 만들고다시 이를 축으로 서울의 중심에 생기를 불어넣는 문화인프라 구축이란 야심을 담고 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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