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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은둔자들" 피터 프랜스 著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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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물은 언제나 낮은 곳을 찾는다.그래서 겸양의 상징이다.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절대로 다른 존재들과 다투지 않는다.항상 유순하고 늘상 양보하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서는 바위까지 깎을 수 있는 힘을 지닌다.사람들은 물을 통해서 이 런 점을 배운다. 동양인에게는 진부한 가르침이지만 또다시 새기는 이유는 서구인들까지 새롭게 관심을 돌리는 동양철학을 우리는 너무 무심하게 내팽개치지는 않나 하는 반성에서다.찌들린 기계문명으로 인한 폐해도 이런 겸손의 미덕으로라면 상당부분 치유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최근 영국에서 『은둔자들』(Hermits . Chatto & Windus刊)이란 너무도 동양적인 책을 펴낸 피터 프랜스도 은둔의 역사와 사회적 기능을 이야기하는 서문에서노자(老子)의 무위(無爲)사상을 언급한 것을 보면 더욱 그런 느낌이 든다.
저자는 자연 그대로를 강조한 이 사상에서 인류 은둔의 역사를풀어내고 있다.물질문명을 기준으로 하면 은둔을 논한 책이 「득」이 될리야 없겠지만 그래도 한 순간이나마 정신을 맑게 하는 청량제 역할은 할 법하다.
인류사에서 은둔의 시작은 고대 중국이 먼저 꼽힌다.저자는 노자의 『도덕경』을 「은둔자들의 선언문」이라고 내세우는데 주저하지 않는다.탐욕.공격성.물질적 부를 거부하고 겸손.궁핍.자기완성에 매진해야 한다는 도덕경은 고독을 건강의 상징 으로까지 여긴다.자연을 벗하면 사회의 갖은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자연의 치유력까지 얻는다는 철학이다.사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성격형성까지도 자연의 힘에 맡겨야 한다는 도교 철학이 설득력을지니기도 한다.
이 책은 중국의 도교 이후로는 곧바로 서양으로 넘어가 아쉬움을 남긴다.고대 그리스에서는 사회의 존경을 개인의 명예로 인식하던 호머적인 문화에서 벗어나면서 은둔이 서서히 각광받기 시작한다.플라톤.소크라테스등의 철학자들을 거치면서 은 둔의 경향은더욱 두드러진다.은둔을 실천하려던 최초의 서양인들은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따르던 견유학파(犬儒學派)들로 꼽힌다.견유학파들은문명세계의 안락함보다 개인의 성취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았다.
이런 경향은 알렉산더대왕의 세계 정복으로 더욱 확산된다.제국이 더욱 넓어지면서 도시단위의 국가보다 개인이 더 중요한 존재로 평가받기 시작한 것이다.이같은 분위기를 등에 업고 견유학파들은 로마등지를 떠돌며 사회질서에 반하는 내용을 설파하다 AD75년께에는 로마에서 추방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에게 가르침을 전파했던 소크라테스 본인은 지극히 사교적인 인물이었다.그의 삶은 대부분 시장이나 길거리에서 보내졌다.하지만 그런 시장에서도 소크라테스는 은둔의 첫째 조건인 금욕의 즐거움을 느끼기는 했다.
시장에 깔린 물건들을 보고 그는 『가지고 싶지않은 물건들이 이렇게도 많을 수가』라고 외쳤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또 인간행위의 판단 기준으로 사회여론보다 개인의양심을 내세웠다는 점에서도 은둔의 역사에서 주요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은둔의 역사에서는 그 옛날에 척박하기 이를데 없는 사막에 정착했던 「사막의 아버지들」을 빼놓을 수 없다.이들 중에서는 고대 이집트의 세인트 앤터니가 가장 유명하다.그는 어느날설교에 감화받아 나일강으로 옮겨간 뒤 20년동안 인간의 얼굴을한번도 접하지 않았다고 한다.그의 사후 40년 뒤에는 그의 명성을 좇아 사막으로 모여든 주민들이 도시 주민의 수에 육박했다고 한다.
2,3세기로 접어들면서 교회들이 부.권력.사치등에 대해 너그러운 태도를 보이자 이에 환멸을 느낀 독실한 기독교인들이 너도나도 은둔의 대열에 참여하게 된다.
이 책에서는 「사막의 아버지들」에 이어 이들의 전통을 이어받은 그리스 아토스 산의 은둔자들.헨리 소로.라마크리슈나.샤를 드 푸코.토머스 머턴등의 삶으로 이어진다.
서구에서도 2백년전까지만 해도 은둔에 대한 향수는 대단했던 것으로 전해진다.여러 사정으로 은둔할 수 없었던 사람은 은둔자를 별도로 고용해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했다.
옛사람들은 은둔을 통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자기 구원이 아니라 「정신적 성장」「자기 완성」등을 추구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은둔자들은 성욕을 어떻게 해소했을까 하는 궁금증을 떨칠 수 없다.이 부분에 대해 저자는 허기가 극도에 달 하면 허기를느끼기 힘들듯 성욕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한다.저자는 그러나 지금까지 「절대은둔」은 한번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그런 은둔이었다면 사실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지도 못했을뿐 아니라 설사존재했다 하더라도 그들이 얻은 통찰 력과 지혜가 죽음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기 때문에 인류의 정신사에는 전혀 기여하지못한다는 설명이다.
현대 심리학에서 인간의 정신건강은 인간관계를 형성.유지하는 능력으로도 평가된다.그렇다면 그런 정신건강을 마다하고 격리를 추구하는 은둔자들에게 삶의 조언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현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하고 저자는 질문을 던진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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