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세상보기>무검열시대 夜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정신병동을 탈출한 일단의 정신질환자들이 대거 서울 충무로에잠입했다.이들은 제각기 영화 제작자.감독.배우로 변신,활동을 개시했다.이들의 활동개시와 한국영화의 무검열(無檢閱)시대가 시간적으로 일치했다는데서 사람들은 한국영화의 앞날 을 예의 주시하기 시작했다.」 이런 풍자적 기사가 서기 2000년대의 어느날,1996년을 회고하면서 쓰여졌다고 가정하자.맞는 기사일까,틀린 기사일까.
『당시 선생님은 영화 예술가들을 정신병자에 비유했습니다.과연그럴수 있었습니까.』 『영화라는 대중문화를 사랑하고 영화감상을취미로 삼는 사람들(즉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그때 일종의 공포속에 빠져들었습니다.가위질을 해도 그렇게 많은 쓰레기 영화가 만들어지거나 수입됐는데 가위질을 안 하면 오죽 엉망이겠습니까.
당시 어느 고등학생 영화팬이 쓴 일기를 소개해 볼까요.』 「영화관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1관에 들어가 미국영화를 보았다.쓰레기였다.2관에 들어가 홍콩영화를 보았다.황당무계했다.3관에 들어가 프랑스영화를 보았다.무슨 얘긴지 이해하지 못했다.4관에들어가 한국영화를 보았다.내 사랑 강수연이 벌거벗고 그 짓을 하는데 정말 화가 났다.」 『한국영화 무검열시대의 개막은 영화사전심의가 언론.출판에 대한 검열에 해당되고 이는 헌법위반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서 비롯됐습니다.그후 한국영화는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습니까.』 『사전심의,즉 검열이 폐지되니까 영화인들은 만세를 불렀습니다.지금까지 그놈의 검열때문에 제대로 영화를 만들지 못했는데 이제 우수한 영화를 만들 때가 됐다고 신나했습니다.그러나 오히려 관객들은 화면마다 폭력과 섹스가 흘러넘치게 됐다 고 개탄했습니다.당시 영화평론의 일부를 소개해 드릴까요.』 「오늘의 한국영화는 네 광신도(狂信徒)들에의해 지배되고 있다.먼저 폭력교(暴力敎)신자.잔혹한 살인장면을집어넣어야 무슨 액션영화가 완성되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다음섹스교 신자.불필요한 섹스장면이라도 자주 넣고,하다못해 젖소부인이라도 바람내야 이들은 직성이 풀린다.다음 치매교(癡태敎)신자.종잡을 수 없는 얘기 전개,썰렁한 결말로 영화관에 들어온 것을 시간이 아깝다고 한탄하게 만드는 사람들이다.마지막은 반체제교(反體制敎) 신자.이들은 반사회.반질서.반교양 을 지향한다.」 『당시 영화 등급제 실시만이 유일한 대책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는데요.』 『결국 등급제가 실시됐죠.그러나 등급제를 성공시킨 것은 등급을 매긴 심사위원들이 아니라 극장주인.비디오가게 아줌마들이었습니다.가령 18세 이하입장 불가판정을 받은 영화라도 걸린 날이면 이들은 문앞에 버티고 서서 한사코 청소년의출 입을 막았거든요.당시 이들의 높은 윤리의식이 아니었다면 우리 청소년들의 정신적 황폐는 골수에까지 미쳤을 겁니다.』 『영화인들의 자질향상도 큰 몫을 했겠죠.』 『웬걸요.그때나 지금이나 이 폭력,이 섹스,이 아노미(anomie)는 나의 예술성을위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 사람들 아닌가요.윌리엄 와일러도 있는데 그들은 꼭 폴 베호벤만 쳐다봤다니까요.』 (수석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