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그 너머의 짜릿함 맛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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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제국의 역습-.

‘알레그리아’ 중 리듬체조와 서커스를 접목시킨 ‘머니퓰레이션’의 한 장면.[마스트엔터테인먼트 제공]

15일 서울 잠실종합경기장 흰색 텐트극장은 극한의 짜릿함으로 타올랐다. 지난해 ‘퀴담’으로 한국에 화려하게 첫 발을 내디딘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의 두 번째 공격은 더욱 강력했다. ‘알레그리아’(스페인어로 환희라는 뜻)의 승부수는 속도감이었다.

이번에도 별다른 스토리는 없었다. 단 명품 코스 요리를 맛 보듯, 9개로 구성된 고난도 테크닉 프로그램들은 각각 다른 빛깔을 냈다. 중세의 거리 악단을 연상시키는 광대들의 장난으로 막이 오른 공연은 아찔한 공중그네로 초반부터 관객의 시선을 붙잡았다. 곧이어 무대 밑바닥을 트램폴린 경기장으로 변환시킨 뒤 펼쳐진 남성 연기자들의 파워풀한 공중돌기는 롤러코스터라도 탄 듯한 느낌을 주며 관객의 얼을 빼놓았다. 훌라우프로 아련한 느낌을 선사하는 ‘머니퓰레이션’, 번지점프에 링 체조를 접목한 ‘플라잉 맨’, 공중판 싱크로나이즈 스위밍에 해당하는 ‘러시안 바’, 몽골 곡예사들의 극단적인 몸 비틀기 ‘컨토션’까지. 어느 것 하나 놓치기 아까운 명곡예였다. 하늘을 날고 싶은 인간의 근원적 욕망을 담은 ‘하이바’로 공연은 마무리됐다.

수축과 이완은 이번에도 여전했다. 짜릿한 묘기로 관객의 심박수를 한껏 끌어올리더니, 어느새 시치미를 뚝 떼며 광대가 등장해 코믹한 동작으로 긴장된 근육을 풀어주곤 했다. 특히 1막 마지막 장면, 수천 장의 종이가 하늘에서 떨어지더니 이내 외로운 나그네의 겨울 풍경으로 바뀌는 장면은 “누가 서커스를 묘기로만 치부하는가. 이 안엔 영혼이 담긴 예술이 들어있다”라는 ‘선언’ 같았다.

물 흐르는 듯한 장면 간 이음새, 절대로 튀지 않은 채 조역으로 더욱 빛나는 조명 등도 품격을 높여주었다. 무엇보다 ‘퀴담’보다 업그레이드된 건 음악이었다. 공중회전과 0.01초까지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선율과 리듬감은 마치 묘기와 음악을 한 몸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영리한 태양의서커스는 무엇이 관객을 최고조로 흥분시키는지 알고 있었고, 마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듯 관객을 요리조리 움직이고 있었다. 그건 결코 돈으로만 도달할 수 없는, 고도로 계산된 창작력과 협업능력이었다. 우리 과연 언제쯤 저 지점에 이를 수 있을까.

1994년 초연된 ‘알레그리아’는 한국·대만 등으로 이어지는 이번 아시아 투어가 마지막이다. “15년간 세계 각지를 돌며 공연한 뒤 영구히 사라진다”라는 태양의서커스만의 불문율 때문이다. 12월21일까지. 02-541-3150  

최민우 기자

◆태양의 서커스=1984년에 캐나다에서 창설됐다. 1년 매출액 1조원, 총 직원 4000여명을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공연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성장했다. 라스베가스·마카오·도쿄 등에 9개 상설 공연과 투어 공연 8개 등 2008년 현재 17개의 공연 레퍼토리를 가지고 전세계를 누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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