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혁칼럼>'1人1馬'를 斬한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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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옛날 중국 제(齊)나라가 한때 이웃나라의 침략으로 위기에 빠졌다.당시 제의 경공(景公)은 초야에 묻혀있던 전양저(田穰저)란 사람이 유능하다는 말을 듣고 그에게 병권을 주어 적을 막게했다.하루아침에 총사령관이 된 전양저는 예정시간 에 군사를 출발시키려 했으나 전군(全軍)의 감독을 맡은 경공의 총애하는 신하 장가(莊賈)가 그때까지 도착하지 않았다.전양저는 군법담당자에게 물었다.『시간을 어긴 죄는 어떻게 다스리는가.』『사형입니다.』 뒤늦게 장가가 나타나자 전양저는 곧 『끌어내 참하라』고명령했다.모든 사람이 깜짝 놀랐다.경공이 가장 아끼는 신하를 죽이라니 듣는 귀를 의심했다.곧 이 보고를 받은 경공의 분부로장가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사자(使者)가 급히 수레를 몰아 달려왔다.그러나 그때 이미 장 가의 목은 떨어졌고 달려오는 수레를 본 전양저는 다시 군법담당자에게 물었다.『군중(軍中)에서는수레를 달리지 못하는 법인데 어긴 죄는 어떻게 다스리는가.』『사형입니다.』 그러자 전양저는 『상감 분부로 달려왔으니 사자를죽일 수는 없고 대신 수레를 끈 말을 죽여 군법을 보이라』고 명령했다.
전양저가 이렇게 1人1馬를 참하자 제나라 군사는 숙연해졌고 소문은 널리 퍼져 제나라를 넘보던 이웃나라 군은 전양저의 군이온다는 말만 듣고도 달아났다(『列國志』).
이런 오래된 얘기를 길게 인용하는 것은 간단히 말해 군에는 기강이 서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기강이 선 군이라야 강군(强軍)이 될 수 있고 국민이 신뢰하는 군이 될 수 있다.군뿐만 아니라 어떤 조직이라도 마찬가지다.기 강이 서야 일이 제대로 되고 능률도 오르고 업적도 낼 수 있다.제나라의 전양저는 바로 그 기강 하나로 적을 무찌르고 나라를 구했다.
지금 우리나라에 그런 기강이 있는가.유감스럽지만 그렇지 못한것같다. 군만 해도 잇따른 탈영사건에 총기난사.수류탄 자폭사건이 터지고 공비소탕작전에서도 오발.오인사고로 귀중한 인명피해가잇따랐다.동해안 방어망엔 구멍이 뚫리고 그전에는 심지어 하극상(下剋上)과 장교탈영사건까지 있었다.
공직자가 복지부동(伏地不動)한다는 소리는 벌써 오래 됐다.기강이 서있는 나라라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갖가지 국정의 허점이나 문제점을 봐도 나라의 기강을 잡는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절실히 느끼게 된다.서울 지하철은 결함이 1천7백군데나 되고 개통된지 얼마 안된 5호선에서까지도 누수가 발견됐다.국가의 자부 심을 걸고 추진한 경부고속철도는 공사를 얼마나 엉망으로 했는지 완공이 2~4년 늦춰지고 공사비가 3조~4조원이나 더 든다는 소식이다.
유럽의 광우병 파문은 아랑곳없이 영국산 쇠고기가 수입.유통됐으나 국민은 알지도 못했고,난지도의 오염 은 사람이 못 산다는 판정이 나온 여천공단보다 심하다는 조사결과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이런 사례를 들자면 끝이 없을 지경이다.성수대교.삼풍백화점의 참사가 있고도 부실.날림공사는 그대로고,환경에 대한 국민공포가 아무리 높아도 당국은 미봉책에 급급할 뿐이다.
정부가 아무리 안전과 환경을 역설해도 밑에서 따라주지 않는 것이다. 위의 지시는 현장과 따로 놀 뿐이다.
정부가 만일 전양저처럼 기강을 세울 수 있었다면 이런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법대로 안하면,지시대로 안하면 혼난다,손해본다,망한다 이런 인식을 갖게 했다면 부실.마구잡이나 무책임한 방치는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요컨대 정부의 영(令 )이 서지 않고 정부에 겁을 안내게 돼있는게 문제다.
왜 겁을 안낼까.겁을 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우선 지시대로안 해도 정부가 모른다.나중에 들통나도 책임추궁이 흐지부지된다.그러니까 겁을 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당장 보라.동해안 방어에 그런 구멍이 있었어도 정부는 책임을묻지 않았다.잇따른 군기문란사고가 있으면 군 분위기를 쇄신할 조치가 있어야 마땅한데도 그런 조치가 없었다.고속철도가 저모양이 됐는데도 누구를 책임추궁한다는 말이 없고,지 하철 공사 문제는 그토록 많이 터졌어도 누가 책임을 졌다거나 배상했다는 말도 없다.이러니 누가 겁을 내겠는가.
물론 기강이 안서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그러나 그중에 정부가 「겁나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도 큰 이유다.겁을 내게 하자면 정부가 우선 문제를 바로 알아야 하고 책임추궁을 해야 한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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