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난지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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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나룻배를 타고 지나가며 바라보았을 때 난지도는 맑은 샛강을푸른 띠처럼 두른 채 난꽃과 갈대밭으로 수놓아져 있었다.촌티가나기는 했지만 예쁘게 가꾼 시골여인같은 모습이었다」.
80년대 중반 소설 『난지도』를 발표해 주목을 끌었던 작가 정연희(鄭然喜)는 소설속에서 50년대의 난지도를 이렇게 표현했다.그러나 78년부터 쓰레기하치장으로 변하면서 이 소설을 쓰던무렵의 난지도는 파리.먼지.악취의 삼다도(三多島 )가 되고 말았다.서울 곳곳에서 매일 트럭 3천대분의 쓰레기가 버려져 거대한 산을 이뤘고,물질의 풍요가 가져온 정신의 황폐까지 확인시켜주었다.소설 『난지도』는 이를테면 「난초의 땅」이 「쓰레기더미」로 이행한 변화의 의미를 간증(干 證)한 작품이다.
「쓰레기산 위로 쏟아져 내리는 불볕은 저주였다.그것은 앙심이었다.쓰레기더미는 죽음의 산이다.인간의 삶에서 부스러기가 되어나온 주검들의 산이다.그 산에는 살아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맹렬하게 살아있는 것이 있다면 썩어가는 일과 썩어가는 냄새뿐이다.그것만이 죽음도 정지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현대인의 정신상황이 난지도의 쓰레기와 닮아 있다는 절망감을 작가는 이렇게 표현했다.그러나 쓰레기 매립지로 변한지 꼭 15년만인 93년2월 모든 쓰레기 반입이 완전 중단됐을 때 사람들은 난지도의 옛모습 새모습을 머리속에 그리기에 바 빴다.서울시의 안정화계획이 30년으로 예정돼 있기는 했지만 더 이상 쓰레기가 버려지지 않게 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만족감을 느끼기에충분했다.아닌게 아니라 근자에 이르러 난지도에는 꿩.오소리.뱀.까치 등과 오동나무.은사시나무 등 50여종의 각종 동식물이 서식하는 것으로 밝혀져 「죽음의 섬」에서 「삶의 섬」으로 회귀(回歸)하는게 아닌가 기대를 갖게 하기도 했다.하지만 그건 「희망사항」에 불과했던가.요즘 국회의 국정감사장에서는 난지도의 오염문제가 연일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매립지에서 나오는 침출수의 중금속 오염도가 갈수록 심각해져 인근 주민들이 벤젠.톨루엔등 발암성 유독물질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하기야폐쇄한지 3년남짓에 불과하니 완전 탈바꿈을 기대하는건 무리겠지만 벌써 부터 삐거덕거리니 아직도 골칫덩어리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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