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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韓人들>4.아이디어와 집념으로 일어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7년째 살고 있는 이기남(李基男.42)씨는 군과 경찰이 주축을 이루는 비상구조대 「팀 사르」의 일원이다.재난이나 대형사고,요인경호때 투입되는 팀 사르에서 그는 유일한 외국인이다.
李씨가 사르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사르 발리지구대장과의 개인적 친분에서 비롯됐다.지구대장은 李씨의 적극적인 성격과 태권도.스킨스쿠버.유격대등으로 단련된 체력을 높이 사 사르대원으로끌어들이고 싶어했지만 외국인에겐 가입자격이 없었 다.李씨는 아무 조건없이 2년반동안 비공식 멤버로 활동했고 이런 성실성이 바탕이 돼 그는 올해초 회칙개정을 통해 정식요원으로 가입했다.
그는 구조작업이나 대통령경호같은 임무가 떨어지면 생업을 제쳐두고 현장으로 달려간다.일당 35달러짜리 일이 직업은 될 수 없지만 그는 『이 일을 통해 인도네시아인이 돼 가고 있다』고 말한다. 사르요원으로 지역사회에 봉사도 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사업도 다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그의 본업은 패션모델사업이다.여자 20명,남자 4명등 모두 24명의 모델을 데리고 패션쇼를 주관하며 의류사업을 겸하고 있다.10명의 모델을 두 고 의류회사를 하던 현지인 친구가 93년 갑자기 도산하는 바람에 반강요에 의해 이 일을 맡게된 그는 처음 4개월은 시간만 보냈다.더구나 그때만 해도 발리섬은 패션쇼가 어색하게 받아들여지던 때였다.94년 초부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한 디자이너와 손잡고 허름한 디스코장을 빌려 첫 패션쇼를 열었다.모델들을 거리로 내보내 행사 유인물도 뿌렸다.이런 시도가 성공을 거둬 이젠 디자이너와 디스코장측에서 먼저 행사요청을 할 정도가 됐다.
그후 경쟁업체가 여럿 생겨 요즘 수입은 전같지 않지만 그래도 일이 몰릴 땐 하루에 패션쇼를 4번이나 열 때도 있다.
그와 호형호제하며 지내는 박태영(朴台暎.34)씨는 89년 말별대책없이 인도네시아로 건너왔다.그 후 배를 굶어가며 여행가이드를 해 모은 돈을 밑천으로 지난 4월 구멍가게 수준의 여행알선 사무소가 아닌 번듯한 규모의 마타하리여행사를 설립했다.그는지금 30여명의 직원들과 함께 한국은 물론 태국시장까지 겨냥해뛰고 있다.
한국관광객이 별로 없는 10~11월이 태국의 관광시즌이라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이런 생각도 다 배곯던 시절 한푼이라도 더벌기 위해 뛰던 시절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79년 남들보다 일찍 태국에서 양말공장(제너럴 삭스)을 차린이정우(李正雨.51)사장은 변화의 물결을 타며 회사를 키워가고있다.현재 종업원은 4백25명인데 요즘은 태국의 인건비도 높아져 부가가치가 높은 스판덱스 양말과 액세서리로 이겨내고 있는 중이다.생산라인도 30%를 컴퓨터 편직기로 바꿔 인건비 절감도꾀하고 있다.
세계에서 몇째 안가는 큰 진주전문매장을 발리에 연 장재홍(張在洪.35)씨는 대학(한국외대 말레이어과)을 졸업한 후 자카르타로 왔다.그 곳에서 3년간 직장생활과 그 후 3년간 오퍼상을해 마련한 밑천으로 그동안 눈여겨 뒀던 진주사업 에 뛰어들었다.지난해 4월 발리에 문을 연 그의 진주매장에는 고객들이 일본이나 유럽에서 제발로 찾아올 정도다.
동남아시아=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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