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著者와함께>"한국현대건축 50년"펴낸 안창모 서울대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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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건축은 삶과 시대를 담는 그릇이다.서울대에서 강의하는 소장학자 안창모(安昌模.34.사진)씨는 지난 50여년동안 이 「그릇」이 심하게 일그러졌다고 목청을 돋운다.해방직후부터 최근까지 한국건축의 역사를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살펴본 『한국 현대건축50년』(재원刊)에서 그는 젊은이다운 패기로 한국건축의 공과(功過)에 공격적으로 덤벼든다.
『겉으로 보기엔 한국 건축계는 현재 르네상스를 맞고 있어요.
그러나 외적 화려함속에 숨겨진 한계와 허상에 대한 고민은 부족한 편입니다.』 安씨는 한국건축은 왜곡된 성장을 보여왔다고 서슴없이 말한다.우선 해방 당시부터 문제였다.다른 예술장르와는 달리 건축계에서는 일제청산과 새로운 민족문화 건설이 주요 이슈가 되지 못했다.
결국 건축의 예술적.문화적 속성은 거세되고 오직 기술으로서의얼굴만 남게 됐다.또 6.25로 건축은 재건 혹은 복구로서의 의미만 더욱 강화됐다.『60~70년대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특히 건축가들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 롭지 못했지요.60년대의 워커힐.여의도.세운상가등 각종 개발프로젝트,70년대의 새마을운동.대단위 아파트건설등 정권 홍보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지요.』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전통이라는 핵심적 요소가 온갖 혼란을 겪게 됐다는 점.성장제일주의를 좇아 서구 양식을 여과없이 수용했는가 하면 북한을 의식한 반공이념으로 고건축의 「판박이」식 복원을 전통으로 오해했다는 것이다.
제5공화국의 예 술의전당.독립기념관.지방문화회관 건립등 여러문화프로젝트에도 눈에 띄는 개선은 없었다.오히려 기술축적이란 명목으로 무분별하게 이뤄진 외국과의 협동작업으로 국내 설계사무소가 외국의 저명한 건축가들의 대서소로 전락하는 경우도 속출했다. 우리 사회의 특수성이 배태한 삶의 문제를 능동적으로 모색해나가는 노력과 실천을 등한시함으로써 건축계 스스로가 자기 위상을 위축시켰다는 해석이다.
『건축은 한 시대의 역사.문화를 창조적으로 담아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건축계는 아쉽게도 체제순응적 혹은 기술지향적 모습을 답보했어요.그러나 80년대 후반이후 활발해진 소규모 건축인 모임 등 현재의 역경을 극복하려는 노 력이 줄을 이어 앞날이 비관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安씨는 특히 외래문화와 고유문화의 이분법적 구분,전통 건축의 단절성 시비등의 극복을 한국건축의 당면과제로 손꼽았다.그리고 해방과 분단.전쟁.근대화의 숨가쁜 길목에서 벗어나 과거를 차분하게 되돌아볼 여유와역량도 축적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일반기업체에서 6년간 일하고민예총 문예아카데미 건축분야 기획도 맡았던 그는 앞으로 우리 건축사에 공백지대로 남은 1945~60년 사이를 파고들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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