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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을찾아서>5.조주 柏林禪寺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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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묻는다:깊고 깊은 뜻이란 어떤겁니까.
답한다:조주선사는 질문을 한 비구니 앞으로 다가가 손을 올려그녀의 어깨를 어루만져 주었다.
묻는다:노스님께선 아직도 그것이 남아 있습니까.
답한다:오히려 그것을 지니고 있는건 네가 아니냐.
깊고 깊은 뜻(密密意)」이란 화두는 중국 선불교에서 최초로 고불(古佛)이라는 존경스러운 칭호를 얻은 선지식 조주종심(778~897)과 한 비구니의 선문답에서 생겨났다.「밀밀의」란 석가모니가 영산회상서 연꽃 한송이를 들어 가섭에게 전해 준 소식,즉 불법의 근본(진여.자성.도)을 말한다.
문답의 핵심은 「그것」이다.잘 봐야 한다.선은 눈깜작할 사이에 화살이 몇만리 날아가 버리고,번개보다도 몇백배 빠르게 허공을 지나가면서 자취도 안남긴다.
비구니의 「그것」은 형이하학적인 색정(色情)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조주의 「그것」은 형이상학적인 불성(자성.마음)을 말하고 있다.덕산의 방(棒:몽둥이질),임제의 할(喝:고함소리)과 함께 선가 3대 명물의 하나인 세치의 혀로 천하를 휘어잡은 조주의 「구순피선(口脣皮禪)」은 이처럼 한순간에 「형이하」를 「형이상」으로 끌어올리고 또 반대로 뒤집기도 한다.
출가승에겐 남녀의 경계가 없다.조주가 비구니의 어깨를 어루만짐은 연꽃송이를 든 것이다.그러나 아직 탈속(脫俗)치 못한 비구니는 텅빈 마음으로 사물을 대할때 손에 닿는것 그대로가 진실된 것이라는 촉사이진(觸事而眞)의 묘체를 모른채 색심(色心)을발동해 되물었다.
조주고불은 타이른다.색(色)을 느끼는 네 마음 그것이 바로 불성(진여.자성.도)인데 정말 너는 그것을 가지고는 있구나라고. 6조혜능 이후의 선종은 마음 밖에 부처가 따로 없다(心外無佛)는 심지법문으로 일관해오고 있다.마음이 어떻게 생각을 일으키는가에 따라 비구니와 같은 색정의 마음이 되기도 하고 조주와같은 무심의 불성이 되기도 한다.어깨를 만져주었을 때 짜릿함을느끼는 그 「마음」이 곧 불성과 도의 바탕임을 모른채 『한 소식 했다는 고불인 당신에게 아직도 색욕이 있느냐』고 묻다니….
쯧쯧! 이같은 선법문의 본색(本色)이 계승돼온 발자취를 잠시 살펴보자.
『오늘은 육영수보살이 지 어미 뱃속에 들었다가 응아하고 ××서 나온 날이다.』(『현대고승인물평전』상권) 한국불교 조계종 춘성(春城)선사(1891~1977)가 박정희대통령 부인 육영수여사 생일에 설해준 선법문의 서두이자 말후구(末后句)다.법석을메운 고관대작의 부인네들은 얼굴을 파묻을 쥐구멍을 찾느라 허둥댔다.생일축하에 겨우 욕만 한 바가지 퍼먹게한 「불경죄(?)」를 저지른 꼴이 됐으니 말이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선이 자리하는 곳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사람의 출생을 이보다 더 사실적으로 묘사할 순 없다.여기가인간언어 표현의 한계다.지위가 높건 낮건,돈이 있건 없건 누구나 태어날때 똑같이 으앙하며 울고,이 세상을 한 번 왔다 한번간다. 불성이 만유(萬有)에 고르게 편재해 있듯이 만인은 평등하다.콧대 높은 부인네들에게 만인평등을 깨우쳐준 하나의 무상법문이 아닐 수 없다.
별명이 「욕쟁이」였던 춘성선사는 바로 저 유명한 만해 한용운선사의 수계제자이며 서울 삼청동 칠보사 창건주이기도 하다.그의일화를 몇개 더 소개한다.
『내 그 큰것이 어찌 네 그 좁은데로 들어갈 수 있겠느냐.』신심 돈독한 한 부인이 여대생 딸을 보내 설법을 듣도록 했을때그가 들려준 법문이다.여대생은 이를 망령든 노승의 음담패설로 오인,집으로 달려와 울며불며 「그 스님 엉터리」라고 난리를 쳐댔다.어머니왈 『아이구,이것아! 그건 큰 스님의 지혜로운 법문이 네 쪼그만 소견머리속에 못들어간다』는 말이라고 일깨워 주었다. 그는 또 어떤 사람이 죽었다 살아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뭐,죽었다 살아났다고! 나는 여태껏 죽었다 살아나는건 내 ××밖에 못봤어.』 현한국불교 선종의 법맥 연원인 중국 임제종양기파 2세 백운수단선사(1025~1072)도 상당법어에서 다음과 같은 「염정(艶情)법문」을 한바 있다.
『하늘과 땅사이,우주 한가운데 한 보물이 있는데 형산(形山)에 감추어져 있다.도를 닦는 형제들이여,눈은 코위에 있고 다리는 배아래 있지만 이 보물은 어디 있는지 말해보라.』 그는 이어 유명한 염시(艶詩)한 구절을 인용,승중(僧衆)에게 들어 보였다. 『얼굴도 모르는 그 사람은 어디로 갔는가,복사꽃은 예와다름없이 봄바람에 웃고 있네.』 ***선 은 인간과 우주의식의본질적인 구조를 파헤치는 작업이다.이를 위해 선은 우선 기존의사유체계를 단호히 거부한다.관념적인 추론이나 이론적인 분석,스테레오타입의 지식,낡은 관습,고저.장단.귀천.범성(凡聖)으로 나누는 이분법적인 분별심 같은 것을 헌신짝처럼 버리라고 한다.
오직 직관을 통해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마치 뒤에 깔린 의미를 찾지않고 그림이나 시를 그대로 보고 읽는 것과 같은 실재(實在)관찰만이 선적인 인식이다.선은 한마디로 주관적 유심론의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다.
선은 분별심과 사량계교(思量計較)를 버리고 실존적 체험을 통해 얻어지는 귀납적 방법의 인식체계를 수립하고자 한다.선이 목표하는 인식체계의 출발점은 「무심」이다.따라서 모든 선문답의 정답은 오직 「무심」 하나밖에 없다.
개인적 인격과 우주 전체성이 훌륭하게 일치할때 의식적 인격과무의식적 인격간의 갈등은 해소된다.이것이 바로 건전한 심적 존재방식(心的 存在方式)이며 현대 정신치료법이기도 하다.이 점에서 선은 현대 정신분석학과 일치한다.그래서 현대 정신분석학은 치료법에 선을 도입,널리 활용하고 있고 스포츠등에서도 선수훈련을 선적으로 한다.유명한 미국 프로농구(NBA) 시카고불스 감독 필 잭슨은 90년대초 3년 연승에 「선의 원리」를 응용했다고 밝힌바 있다(뉴스위크지 94년 6월22일자).
화두란 「제목」이란 뜻이다.글이나 신문기사의 제목처럼 선문답.상당법문.게송(선시)등의 핵심을 드러낸게 화두다.화두(일명 공안)는 무의식이 의식을 침공하도록 해 고정된 틀에 묶여 있는우리의 의식을 해방시킨다.이같이 급격한 의식변환 으로 야기된 「자신의 변혁」을 체험하는 것을 보여주는게 선문답이다.
조주가 주석했던 하북성 조주의 백림선사(구명 관음원) 답사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
***메 모 ▶위치:하북성 조현 조주▶교통:석가장에서 1백30㎞.포장도로▶유적:조주친식 측백나무(柏樹).조주돌다리(石橋)등 글 이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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