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3년 만에 돌아온 '슈렉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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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할 수 없는 녹색 괴물' 슈렉이 3년 만에 돌아왔다. 시간이 흐른 만큼 슈렉도 한층 성숙해진 느낌이다. 신분.외모 같은 가치에 길들지 않은 '동물성'은 여전히 간직하면서도 세상을 보는 눈은 넓어졌다. 2001년 '슈렉'은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새로 썼다. 그간 할리우드를 지배했던 디즈니표 애니메이션을 통쾌하게 뒤엎었다. '백설공주''인어공주''미녀와 야수'등 곱고 예쁜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드림웍스가 들고나온 '슈렉'이라는 '엽기적' 영화에 거의 그로기가 됐다.

동화책을 찢어 밑을 닦는 화장지로 쓰고, 더러운 진흙탕에서 샤워를 하고, 사정없이 방귀를 뀌어대고, 그러면서 미(美)와 추(醜)에 대한 고정관념을 와르르 무너뜨렸던 '슈렉'은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대성공을 거뒀다.미국에서만 2억6000만 달러(약 3100억원)의 수입을, 한국에선 250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화려한 성공은 '후편'에 짐이 될 수 있다. 관객들이 이미 영화스토리에 익숙해진 데다 기대 수준이 높아져 있기 때문에 웬만한 전략으론 전편의 영광을 이어가기 어렵다. 자칫 '그 나물에 그 밥'에 그칠 수 있는 것이다.

'슈렉2'는 이런 함정을 교묘하게 빠져나간 것 같다. 지난 6일 오후 (현지시간) '슈렉2'의 시사회가 열린 미국 로스앤젤레스 한복판의 랜드마크 리전트 극장은 폭소가 끊이지 않았다. '아~하'하는 공감의 감탄사도 터져나왔다. 오는 12일 개막하는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될 만했다. 2001년 1편도 칸 경쟁에 나갔으니 애니메이션으로는 진기록을 세운 셈이다.

'슈렉2'는 "마침내 슈렉과 피오나 공주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났던 그 자리에서 시작한다. 신혼여행을 떠난 그들은 진흙탕 얼굴로 뜨겁게 키스한다. 하지만 '짝꿍'이 1초라도 안 보이면 섭섭해 하는 이 부부를 세상이 그냥 둘 리 없다. 공주의 부모가 그들의 '머나먼' 왕국으로 슈렉 부부를 초청하며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다. 왕과 왕비가 사위의 흉한 외모에 땅이 꺼질 것 같은 충격을 받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슈렉2'는 슈렉과 공주를 떼어놓으려는 주변의 음모와 이를 극복하고 사랑을 되찾는 슈렉 일행의 모험으로 진행된다. 새로운 인물도 다수 등장한다. 슈렉에게서 공주를 빼앗으려는 '얼짱' 왕자, 그 왕자의 엄마이자 온갖 마법을 부려 슈렉을 곤경에 빠뜨리는 요정계의 대모, 괴물 전문 살인 청부업자 '장화 신은 고양이' 등이 합류했다. 마법의 탑에 갇혀 있던 피오나 공주를 키스로 깨워야 할 주인공은 슈렉이 아니라 왕자였어야 한다는 큰 틀 아래 전편의 내용을 재차 뒤집는 것이다.

패러디의 대상도 넓혀졌다. 전편이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집중 공격했다면 후편은 할리우드의 영화 산업 전체를 겨냥한다. 왕국 뒷산에 크게 새겨진 '머나먼 '이란 글자가 숱한 영화에 등장했던, 즉 꿈과 희망의 공장이라는 할리우드 안내판을 빼닮았다면….

왕국의 거리 풍경도 '명품 브랜드'가 즐비한 베벌리 힐스를 연상시킨다.

1, 2편 모두 감독을 맡은 앤드루 애덤슨은 "공주의 부모는 외모와 같은 드러난 이미지에 연연하는 인물일 것으로 판단해 베벌리 힐스를 신작의 배경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외모가 행복을 좌우하지 않는다'는 주제는 후편에서도 계속된다. 실제로 슈렉과 대립하는 '얼짱' 왕자는 어머니의 과보호 아래 자란 '마마 보이'에 불과하다. 사랑은 자기와 다른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메시지가 더욱 단단해졌고, 결혼 또한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닌 가족간의 만남이라는 생각이 추가됐다. 왕자역을 목소리 연기한 루퍼트 에버렛은 "돈과 외모만 추구하고, 생각하는 건 싫어하는 미국 문화를 풍자한 셈"이라고 평했다.

3차원 디지털 기술로 구현한 인물의 표정도 훨씬 부드러워졌다. 실사(實寫) 같은 느낌을 주면서도 애니메이션 고유의 과장을 버리지 않았다. 머리칼이나 근육의 움직임은 물론 옷에 비친 빛의 그림자까지 섬세하게 그려냈다.

'슈렉'은 벌써 3편 제작이 얘기되고 있다. 프러듀서로 참여한 애런 워너는 "1편은 동화의 환상성을, 2편은 이미지의 허구성을 비틀었다"며 "앞으로도 갈 길은 많다"고 밝혔다. 국내 개봉 6월 18일.

로스앤젤레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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