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 영국 총리가 금융위기 해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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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가 세계 금융위기 해결사로 등장했다고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가 평가했다.

크루그먼은 13일 뉴욕 타임스(NYT) 칼럼에서 “브라운 정부는 금융위기의 본질을 명확히 인식하고 과감하게 행동했다”며 “금융위기에 당황하던 유럽 각국과 미국 정부도 영국과 마찬가지로 정부가 은행에 돈을 주는 대신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브라운은 금융위기 해법을 제시했다”고 칭찬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정책에 대해 극언을 서슴지 않아 ‘부시의 저격수’라는 말까지 듣는 크루그먼으로서는 이례적인 찬사다.

영국식 해법은 이번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의 대처와 대조된다.

미국은 “민간은 옳고 정부는 틀리다”는 보수주의 이념에 사로잡혀 은행 국유화에 거부감을 보였다.

해법을 제시하지 못해 세계 금융위기만 깊게 한 뒤에야 뒤늦게 영국식 해법을 수용했다. 브라운의 리더십은 12일 파리에서 열린 유럽 정상회의에서 빛을 발했다. 브라운식 위기 대처로 영국 금융시장이 급속히 안정되는 것을 본 유럽 정상들이 영국식 해법을 따르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유럽 정상들은 앞다퉈 재무장관 출신인 브라운의 조언을 구했다.

브라운은 15일 브뤼셀에서 열리는 유럽의회에 참석해 새로운 국제금융 체제의 필요성을 역설할 계획이다.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는 14일 인터넷판에서 “브라운이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윈스턴 처칠 총리의 업적에 버금가는 역사적 업적을 성취하려 한다”고 보도했다. 루스벨트와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금융질서를 설계한 브레턴우즈 체제를 만들었다. 이 체제에 따라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등이 만들어져 세계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브라운은 영국의 3개 부실 은행에 370억 파운드(약 77조원)의 공적 자금 투입을 발표한 지 한 시간 만에 세계 금융시장 개편에 팔을 걷어붙였다.

그는 “돈이 국경을 넘나들고 다국적기업들이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상황에서 세계적 차원의 감독체제가 마련돼야 한다”며 “앞으로 수년 내 새로운 국제 금융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세계 지도자들은 루스벨트와 처칠이 60여 년 전 세계 금융체제를 개혁한 것과 같은 용기와 통찰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외환위기로 고통을 받던 98년부터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한다. 그러나 세계 지도자들이 다른 긴급한 현안에 몰두해 이를 제기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브라운의 과감한 금융정책은 추락하던 그의 인기를 되살렸다. 그가 이끄는 노동당은 최근 지방의회 선거에서 잇따라 보수당에 패해 “브라운이 물러날 때가 됐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노동당 내에서도 도전자가 생길 정도였다.

그러나 이번 금융위기를 겪으며 그의 입지는 탄탄해졌다. 브라운은 “(금융기관 종사자의) 도덕적 해이에 대해서는 보상해서는 안 된다. 힘든 노동과 노력, 기업가 정신이 정당하게 보상받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며 “정부는 금융위기를 맞은 국민에게 확고한 안전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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