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중앙시평

민주당에 주는 충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민주당 정세균 대표 체제가 출범한 지 100일이 지났다. 월요일 정 대표는 100일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명박 정부에 경제운용 기조를 전면 수정하라고 촉구했다. 지난달 초 나는 이 시평란에서 한나라당의 미래에 관해 이야기한 바 있다. 이번에는 민주당에 대해 말해보고 싶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지난달 민주당 내 개혁그룹인 민주연대 세미나에서 경희사이버대 민경배 교수가 토론한 내용이다. 그는 최근 인터넷 공간에서 민주당은 그 존재가 없는 정당이라고 혹평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그리고 진보정당들은 비판이든 지지든 논란을 일으키는 데 반해 민주당은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악플’보다 더 서글픈 게 ‘무플’이라는 말은 바로 민주당을 두고 하는 얘기일 터다.

민 교수 이야기는 젊은 세대에 관한 것이라고 치자. 민주당의 오랜 지지그룹이었던 386세대는 어떨까. 10월 9일 중앙일보 조사연구팀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민주당에 대한 40대의 지지율은 전체 평균 10.2%에도 못 미치는 9.6%, 화이트칼라의 경우는 7.0%에 불과하다. 386세대에게 민주당은 떠난 연인이 아니라 잊혀진 연인일지도 모른다. 사랑이든 정치든 이별보다 더 서러운 게 망각이지 않은가.

문제의 심각성은 이런 지지율이 2006년 지방선거 이후 구조화돼 있다는 점이다. 지난겨울 대선의 득표율이 그러하고, 올봄 총선의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당이 이렇게 약세인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모호한 정체성, 약화된 리더십, 시민사회와의 소통 부족 등이 그 주요 요인일 것이다.

이 가운데 특히 주목할 것은 리더십이다. 정치적 지지에는 현재의 판단은 물론 미래에의 기대가 중첩돼 있다. 정치적 리더는 유권자 개개인이 자신의 기대와 열망을 위임하는 일종의 정치적 대행자(代行者)다. 오늘날 어느 나라 어떤 정당이든 국민 다수로부터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미래 권력을 위한 집합적 경쟁 리더십(collective and competitive leadership)이 풍성해야 하는데, 민주당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누구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여전한 반감이 낮은 지지율의 원인이라고 지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절반의 진실만을 갖고 있다. 이른바 반노(反盧)의 기억이 뇌리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더라도 노무현 정부는 이미 지나간 권력이다.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지만, 이것도 노 전 대통령의 리더십을 압도할 수 있는 새로운 리더십이 부재한다는 것을 증거할 뿐이다. 장강(長江)의 앞물은 뒷물에 의해 비로소 사라지는 법이다.

정치사회학 연구자로서 안타까운 것은 우리 사회에서 증대해온 정치적 무관심에 민주당의 책임이 크다는 점이다. 한나라당이든 진보정당들이든 다소 증감이 있지만 자신의 지지율을 유지해온 것에 반해 민주당의 낮은 지지율이 정치적 무당파 층이 늘어난 일차적 원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위기 탈출은 바로 그 원인의 처방에서 시작해야 한다. 첫째, 민주당은 자신의 정체성에 걸맞은 비전과 정책을 구체화해야 한다. 미국 민주당에서 볼 수 있듯 오늘날 중도진보의 가치는 더 많은 계층에 기회(opportunity)와 번영(prosperity)을 공유하게 하는 것에 있다. 이를 위해 시장의 효율성과 공공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4대 불안(고용·주거·교육·노후)을 해소할 수 있는 설득력 높은 정책대안들을 민주당은 제시해야 한다.

둘째, 집합적 경쟁 리더십을 풍성하게 해야 한다. 정치의 독자성은 사람으로 시작해 결국 사람으로 끝난다는 점에 있다. 민주당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포스트 디제이(DJ), 포스트 노무현의 리더십이 분명하지 않다는 데 있다. 미래에의 약속을 실현할 수 있는 당내 리더들을 키우고 새로운 외부 리더들을 적극 충원함으로써 집합적 경쟁 리더십이 풍부해질 때에만 떠나간 지지그룹들이 되돌아올 것이다.

민주당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는 민주당의 존재가 우리 정치,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있다. 어떤 정치적 결정이더라도 행정과 입법 사이의 생산적 균형이 필수조건이라면, 민주당의 약화는 결국 행정권력의 독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정치는 2차원적 산술 이상의 3차원적 벡터의 과정이다. 의석수에 연연해할 필요가 없다. 민주당이여, 부디 벡터적 상상력과 역량을 보여주길 바란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