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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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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무.파.당근.감자.토란.연근.미나리.콩나물등 채소와 대구.동태.도로묵.오징어등 생선….각자가 비닐봉지에 싸들고 온 재료를끓는 솥 안에 쏟아넣었다.대체로 다듬어지고 장만된 것들이었으나더러는 쇠고기를 덩어리째 넣는 이도 있었고,사 과 여러개를 통째로 던지는 이도 있었다.은행 알을 한 됫박가웃이나 가져온 이와 홍포도주 한병을 뿌려넣은 이는 칭찬을 받았고,누에 번데기를쏟은 이는 『우우…』 핀잔을 받았다.
고교수가 「우정탕」이라 이름붙인 그 잡탕요리는 생각보다 맛있었다.갖은 재료가 어우러져 여느 국이나 찌개에서는 볼 수 없는깊은 맛이 돌았다.
『바로 「찬코(ちゃんこ)」요리 맛인데요.』 세미나 참석차 최근에 일본을 다녀왔다는 대학강사 하나가 말했다.
『찬코? 그게 어떤 요립니까?』 을희가 얼른 받아 물었다.
『일본 씨름꾼들이 즐겨 먹는 냄비요리지요.이 우정탕처럼 갖은재료를 섞어 넣어 끓여먹는 영양탕입니다.몸집이 큰 씨름꾼들은 모두 대식가(大食家)예요.씨름꾼 합숙소에선 그 많은 대식가들을양껏 먹이기 위해 흔히 찬코 요리를 하는 모양 입니다.「찬코 나베(ちゃんこなべ)」라고도 불립니다.』 고교수가 대신 설명했다. 『찬코….잡탕 요리를 왜 찬코라 합니까? 일본말같지 않아 보이는데요.』 검사라는 이가 챙겼다.
『실은 저도 그게 궁금해서 일본어 사전을 뒤져봤지요.「찬코요리」라는 항목에 「찬코는 씨름꾼 합숙소의 요리인」이라 밝혀놓고,「찬코 요리란 생선.고기.채소를 잡탕으로 끓여먹는 역사(力士)사회의 독특한 요리,값싸고 영양가도 높다」라 쓰 여 있더군요.』 『찬코의 「찬」은 혹시 우리말의 「반찬」이라는 뜻의 「찬」이 아닐까요? 「코(こ)」는 일본말로 「아이」나 「종속적인 자리에 있는 자」를 가리키는 말이지요.한.일 비교언어를 연구하는 나상록(羅常綠)선생에 의하면 우리말 「아이」「아가 」의 옛말 「아고」가 일본어로 바뀐 것이라니까 「찬코」는 원래 「찬 만드는 자」라는 뜻의 우리말이었다고 봐지는데….』 을희는 조심스레 의견을 내놓았다.
『그럴듯합니다.일본 국기(國技)인 씨름은 삼국시대 때 우리나라에서 전해진 「각저(角抵)」로부터 비롯됐다 하지 않습니까? 씨름.기술집단을 따라 요리사도 따라갔을 것이고 요리법이랑 요리이름도 으레 건너갔을 테지요.』 검사다운 추론(推論)을 듣고 있던 고교수 동생 고박사가 말했다.
『요다음달 모임에 그 나선생이라는 분을 모시고 이야기를 듣도록 하면 어떨까요? 저는 5세기 고구려 고분벽화의 씨름꾼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오늘날의 일본 씨름꾼 모습과똑같았거든요.』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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