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칼럼

장을 보러 갈 땐 아이를 데리고 나서자 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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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부름에 관해서가 아닌 수학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 문장제는 무조건 어려워요!

수학시간. 아이들과 함께 곱셈 단원 공부를 몇 차시 나갔을 무렵이었다. 이미 학원에서 선수 학습을 해 오기 때문에 곱셈에 관해서 빠삭해진 학생들도 여럿 있었고, 집에서 학습지로 곱셈단원을 공부를 끝 낸 아이들도 여럿 있어서인지 수학 익힘책에 있는 10개의 단순 곱셈문제를 5분이 채 되지도 않아 대부분의 아이들이 문제를 다 풀었다. 답도 거의 다 맞았다.
어려운 숫자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곱셈 문제도 척척 알아맞힌다. 그런데 수학을 잘하는 아이들이나 수 문제를 잘 해결하는 아이들도 유독 어려워서 고민을 하는 문제가 있다. 바로 문장제이다. 유형은 이렇다.

초등 3학년 1학기 수학 곱셈단원에서
문제) 2장에 72원하는 색상지가 있습니다. 미영이가 색상지 8장을 샀다면 모두 얼마입니까?

문제에 답을 적지 못하는 아이들은 대게 이런 모습을 보인다.

- 문장제 문제를 풀고 난 뒤 자신이 맞는 답을 적었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아이
- 제시된 숫자를 곱하면 답이 나올 것 같은데 무엇을 곱해야 할지 고민만 하는 아이
- 선행으로 배운 나눗셈을 이용하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아이

이런 아이들은 수학교과의 지식을 문제집 속에서만 배웠기 때문에 수학에 자신은 있지만 시험 볼 때면 항상 출제되는 문장제 문제 때문에 고초를 겪는다.

초등 수학에서 마지막단계의 응용문제는 실생활 관련 문제로 이루어져 있고 문제에서 말하는 어떤 상황을 머릿속에 그리지 못한다면 문제를 풀기 힘들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런 상황을 경험한 적이 별로 없거나 경험했더라도 수학적 고민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문장제 문제가 나오면 무조건 별표하나 그려놓고 ‘이 문제는 어려워서 못 풀어!’ 하곤 문제를 읽기 전부터 풀지 않거나 질문부터 한다. 심지어 어떤 아이는 ‘문장제를 풀어라’ 라는 말을 듣자마자 문제 풀기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 수학 공부 '실생활에 적용하기'

7차 교육과정의 기본 방향은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을 현실에서 직관적인 활동을 통해 익히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초등학교 단계의 수학 교과 내용 또한 실생활을 기반으로 하여 형성되었고 차시별 구성을 살펴보면 각단원에서 필요한 지식 이해 관련 수업 후 마지막 교과 정리 차시는 ‘실생활에 적용하여 봅시다.’라는 주제로 아이들이 일상생활 중에 접하는 문제를 해결해 봄으로써 단원을 정리를 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아이가 배운 지식을 올바르게 활용할 수 있는 ‘수학적 탐구력’을 키워주기 위해서는 담임교사와 부모 모두 아이들이 배우게 될 내용과 관계가 있는 수학적 소재들을 아이의 주변 환경에서 찾아 주어야 한다. 수학 공부의 왕도는 ‘문제집과 학습지 풀기’가 먼저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아이의 눈높이와 발달단계를 고려하지 않고 수학과의 경우 선수학습만이 수학과 흥미를 높이는데 도움을 주며 학업 성취도에 큰 공헌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의 수학과 가정 학습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방문학습지’의 경우도 실물이나 체험을 통한 구체화 과정은 대충 하거나 건너뛰고 ‘수’와 ‘공식’을 암기위주의 주입식 반복 학습 체계로 구성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내 아이가 ‘수학적 탐구력’과 ‘수학과 흥미’를 갖길 원한다면 학습지와 문제집을 덮고 현실 속에 뛰어 들자. 교육자 피아제는 학습이란 현실 상황에서 직접 관찰과 구체물을 통한 활동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지금 당장 아이의 손을 잡고 수학과 교과서가 좋아하는 구체물들이 제일 많은 시장이나 마트로 공부하러 가자.

평소 아이들이 집과 학원에서 접하는 수학 학습은 단답형 문제가 주를 이루고 있고 수업은 각 단원에 제시된 단답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쉽게 문제 푸는 요령을 알려준 다음 관련된 공식이나 방법을 암기하여 빠른 시간 내에 많은 문제를 푸는 능력을 키우는 ‘계산력 향상’ 에 치중하여 진행된다. 이러한 학습은 아이들의 문제 푸는 속도는 향상될지 몰라도 수학적 사고력을 요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수학을 싫어하는 이유는 잘못된 수학과 교수법 때문이다. 구체물로 학습해야할 단계의 아이들에게 구구단 외우기, 문제 푸는 요령, 공식 등 추상화된 지식을 전달하고 무조건 받아들이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내 아이가 수학과를 싫어하거나 어려워한다면 흥미가 더 떨어지기 전에 아이의 수학과 공부를 현실로 끌어 놓아야 한다.

◇ 공부하며 장보기

장보러 가기 전 잠시 시간을 내서 아이의 수학교과서 삽화와 공부할 문제를 살펴 오늘의 학습 주제를 정한 후 간단하게 장보러 가서 아이와 함께 해결해볼 문제를 메모한다.

측정과 단위 관련 수학 공부를 장을 보며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008년 ( )월 ( )일 _________ 마트

- 먼저 떠나기 전에 작은 스프링 메모수첩을 준비한 뒤 자녀에게 사야할 음식이나 품목, 그리고 규격이나 용량을 불러주며 적도록 한다.
- 품목별로 예상되는 가격을 옆에 써보게 한 후 그 금액의 총합을 아래에 적게 한다.
- 마트에 가서 해당 품목을 필요한 용량만큼 구입해보게 한다.
(큰 마트에는 낱개가 아닌 여러 개를 함께 팔고 용량도 다양하므로 아이들은 길이, 무게, 넓이(면적), 부피(용량)와 용량(用量)의 단위인 개, L, mL, kg, g, 쌈, 톳, 첩, 다스, 관, 벌, 판 등에 관한 경험을 하게 된다.)
- 달걀 25개를 적어준다면 10개 들이 2개와 6개 들이 1개를 산 후 1개를 더 샀다고 초과 구입량을 옆에 적기도 하고 모자라게 산 경우에는 그만큼 적게 샀다고 메모하도록 하게 해야 한다.
- 간혹 버티컬과 같이 한 상품에 다양한 길이가 있는 경우 집에서 길이를 재어 간 후 마트에서 길이를 확인하는 방법도 설명해주면 매우 유용하다.(신체 부위를 이용하여-한 뼘의 길이를 이용해서 길이재기 등의 방법도 좋다.)
- 마트를 다녀와서는 예상했던 비용과의 차이나 계산이 틀리진 않았는지를 살펴보는 시간을 갖고 사가지고 온 음식을 똑같이 나누고 배분하는 것도 시킬 필요가 있다.

단순히 수학문제를 잘 풀기 위해서 하는 훈련이 아니라 내가 배운 지식을 직접 활용하는 체험이야 말로 살아있는 수학 공부다. 수학을 재미있게 공부하기 위해 게임을 통해 흥미를 이끌어 내거나 수학 만화를 읽으며 학습 내용을 이해하는 것 보다 생활 속에서 아이가 직접 배운 내용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아이들은 부모를 따라 장보러 가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장보러 갈 땐 아이를 데려가자. 아이가 좋아하는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수학적 활동을 하며 익힌 수학적 사고력이야 말로 힘 있는 지식이 된다. 덧붙여 아이가 어렵게만 생각하던 교과서 문장제도 직접 해결해보고 싶은 생활 속의 도전 과제가 될 것이다.

김범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