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地圖>29.영화-컬트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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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20세기가 지나온 무대들을 돌아보면 60년대만큼 인간의 정신이 만개한 적은 없었던듯 하다.60년대는 유럽 지성사의 흐름을바꾼 68년 학생운동을 비롯해 시민권리운동,인종차별 철폐,여성해방,성적 다원주의,반전(反戰)평화운동등 소외 속에 잠재돼 있던 인간적 이상이 집단적으로 분출된 시대였다.그 중심에는 팝의성전(聖戰)「우드스톡」으로 상징되는 청년문화가 자리하고 있었다. 자신들을 「성년의 전단계」로서가 아니라 역사의 독립된 주체로 규정한 이들은 냉전과 베트남전쟁의 광기를 돌파하면서 제국주의와 나치가 피폐시켰던 인간의 가치를 되살리려 했다.따라서 20세기 후반의 거의 모든 문화적 지향이 60년대라는 저수지를 수원(水源)으로 삼고 있는 건 당연하다.
컬트영화도 이 청년문화-기성의 모든 제도와 가치관이 부정되는반(反)문화-의 전통과 떼어선 생각할수 없다.
알다시피 「컬트」라는 영어단어엔 신성한 존재에 대한 숭배 혹은 예배의 뜻이 담겨있다.
컬트영화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촉발시킨 작품은 『로키 호러픽처 쇼』인데 이 영화에 대한 젊은이들의 관람형태엔 사실 광신도들의 숭배의식과 비슷한 측면이 있었다.컬트영화의 전형으로 꼽히는 이 영화는 75년 영국에서 처음 개봉됐던 당시엔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했다.
젊은 남녀가 폭풍우를 피해 외계인 양성연애자가 사는 집으로 들어가면서 일어나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사건들을 록 음악과 춤으로 담아낸 이 영화는 그러나 몇년 뒤 미국의 심야극장에 소개되면서 젊은이들에게 열렬하게 수용된다.금요일이나 토 요일 밤 도심 또는 대학가에 자리잡은 소극장에서 상영된 이 영화에 홀딱 빠진 젊은이들 중엔 수십번씩 되풀이해 보는 것은 예사고 3백번이나 5백번을 봤다는 이들도 나오게 됐다.그러다보니 등장인물들의 대사와 노래를 달달 외게 된 관객들 은 극중 대사나 노래를따라하는 것은 물론이고 결혼식 장면같은데선 스크린을 향해 쌀이나 빵조각을 내던지기도 했다.광적인 관객들 중에는 영화 시작 전 주인공 복장을 하고 무대에 올라가 영화의 주요 장면을 재현하기도 했다.
***관객들 주인공 행동 모방 『카사블랑카』가 컬트영화의 반열에 올라있다고 하면 미심쩍게 들릴지도 모르겠다.42년 만들어져 아카데미 작품상까지 받았던 이 고전영화는 미국에서 오랫동안잊혀져 있었다.
그러다 64년 대학가 심야극장에서 재상영됐을 때 젊은층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게 됐다.그들은 험프리 보가트에 매료돼 대사를따라하는가 하면 보가트를 떠나는 잉그리드 버그먼에게 콜라병을 던지기도 했다.관객들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몰려 다니면서 주제가인 『세월은 흘러도』를 불러제쳤다.
우리들 사이에서 컬트영화라는 말은 워낙 산만하게 취급되고 있어 무정형의 개념처럼 돼있다.그러나 사실 발상지인 서구에서도 컬트영화의 정체성은 모호하다.그래서 컬트영화를 한두가지 고정된개념으로 포획하려고 하면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 는 모래처럼 유실되는 부분이 늘 생기게 된다.작품이 속한 사회.정치적 맥락과 해당시대 관객들의 반응(수용태도)을 고려해야 하는 것은 이때문이다(저명한 영화비평가 짐 호버만은 배용균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 미국에선 컬 트영화로 분류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를 한국에 적용하다면 쉽게 수긍하기 힘들 것이다).
***.카사블랑카'도 컬트 개념 정의를 둘러싼 평자들의 혼선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점은 컬트영화는 어떤 식으로든 「금기에 대한 위반」의 형식을 취한다는 사실이다.
그 위반은 기존 사회의 관념과 가치에 대한 것이기도 할뿐 아니라 이미 형성된 영화적 형식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카사블랑카』는 관객의 반응,즉 열광적 숭배라는 측면에선 『로키 호러…』와 마찬가지로 컬트영화에 편입된다.
그러나 내용과 형식에서 『카사블랑카』는 전통적이고 관습적이다.반면 『로키 호러…』는 주인공이 여장 남자이자 양성연애자라는사실에서 드러나듯 소재에서부터 비주류에 서려고 하며 SF.공포.뮤지컬등 장르영화들을 뒤섞어놓음으로써 정돈된 영화형식에 저항한다.그래서 흔히 『카사블랑카』,제임스 딘의 『이유없는 반항』등을「고전적 컬트」로 불러『로키 호러…』류의 「심야 컬트」와 구별한다.컬트영화라고 할 때는 일반적으로 심야 컬트다.
컬트영화는 주류영화가 외면하는 동성애나 마약문화,도착된 성,과도한 폭력등에 주목해왔다.
이것들을 담는 방식도 전통적인 이야기 서술구조 대신 개연성없는 사건들을 연결시키는 식으로 스토리 자체를 뒤틀어 놓는다.그리고 역겹고 메스꺼운 장면을 노골적으로 강조한다(예컨대 『핑크플라밍고』와 『소돔의 1백20일』같은 영화들에선 실제로 똥을 집어먹는 장면이 나온다).
***한국선 소재주의로 이해 80년대에 황지우 같은 시인들이신문의 광고란등을 도입함으로써 시를 「해체」했던 것이 독자들의나태해진 감성을 각성시키려는 목적을 띠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컬트영화는 추악하고 더럽다고 인정돼온 것들을 매개없이 제시함으로써 고상한 예 술이라는 개념을 탈신비화하고 중산층의 도덕적 위선을 폭로하고자 한다.
70년대에 젊은 관객들이 컬트영화에 심취했던 것도 닉슨의 등장 이후 도시근교의 중산층 문화와 보수적인 분위기가 사회를 억누른데 대한 반발심리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그들은 컬트영화에 열광하는 것을 통해 또래들끼리 묘한 연대감 을 확인하면서 「황금시대」60년대를 향수했다.하지만 「우드스톡」이 아니라좁고 답답한 심야극장에서 말이다.
한국에서 컬트영화는 다분히 소재주의적으로 이해돼온 측면이 있다.지난해 박철수감독의 『301.302』가 개봉될 때 컬트영화에 대한 논란이 인 것도 여성의 「이상 식욕」을 취급했다는 점때문이었다.
그러나 컬트영화란 기본적으로 관객들의 반응에 의해 판정되는 사후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영화가 공개되기도 전에 컬트라는 호칭이 부여될 수는 없을 것이다.소재가 컬트적이라고 해서 모든 영화가 컬트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컬트영화의 개념이 혼돈스럽게 사용되는 것은 컬트영화가 성장할수 있는 토양이 척박한 상태에서 이름이 먼저 이식돼온결과로 볼수 있겠다.
더구나 심야의 소극장 문화가 없는데다 사회적으로 젊은이들의 하위문화에 대한 이해와 관용의 폭이 좁아 컬트영화라는 문화가 형성되기 힘들다.따라서 부르주아적 고상함과 기존질서가 설정한 정상성에 저항한다는 목적을 띠고,60년대 청년문화 의 연장에 있는 서구의 컬트영화가 한국에선 형해화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뭔가 엽기적이고 괴상한 영화면 컬트영화라는 1차원적인 정의가 득세하게 된 것이다.
***.집단적 참여'개념 퇴색 저항적인 청년문화가 크게 위축되고 퇴조하면서 구미에서도 컬트영화의 전통적인 테두리는 많이 축소되고 있는게 사실이다.특히 비디오와 케이블TV가 영화관 문화를 대체하면서 집단적 체험과 참여로서의 컬트영화라는 개념은 색이 많이 바랬다.
그렇더라도 컬트영화의 핵심은 파격과 전복,바로「부정의 정신」이라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마침 공륜(公倫)의 영화 사전심의가 위헌(違憲)이라는 결정이나왔다.이 열려진 공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사이비 컬트」혹은 「유사 컬트」가 컬트영화로 행세하는 시대를 살게 될 것이다.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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