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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글로벌 은행 탄생 위해 국내 자본 총동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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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일반 기업이 은행을 소유하지 못하게 막아온 금산분리, 정확히 말해 은산분리(은행과 산업자본의 분리). 이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자본시장통합법과 함께 정부가 추진 중인 금융개혁의 두 기둥이다. 이는 규정을 조금 다듬거나 손질하는 성형수술 수준이 아니라 체질과 모습까지 확 바꾸려는 ‘유전자 치료’에 가깝다.

금산분리 완화는 제조업에선 세계적인 기업이 나오고 있는데 금융은 여전히 개도국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반성에서 출발한다. 제조업 부문의 자본을 은행으로 흘러가게 해 대형화를 유도하고, 이를 바탕으로 금융산업을 국제수준으로 키우겠다는 게 기본적인 취지다. 재계는 환영한 반면, 민주노동당과 시민단체들은 반대 입장을 재확인했다.


◆무슨 효과 있나=이날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완화 방안의 핵심은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소유한도를 대폭 높이는 것(4%→10%)이다. 또 기업은 인수합병을 전문으로 하는 사모투자펀드(PEF)에 투자함으로써 은행을 간접적으로도 소유할 길이 대폭 확대됐다. 당장 ‘삼성은행’ ‘현대은행’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삼성이나 현대가 출자해 경영에 영향을 주는 은행이 곧 나온다는 뜻이다.

이는 현안인 산업은행의 민영화에도 큰 변수가 된다. 지금으로선 국내 금융자본만으로는 산은 민영화가 어렵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따라서 국내 대기업이나 PEF, 해외자본의 수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금산분리 규제 완화는 그 길을 터주는 효과가 있다. 특히 산업자본으로 간주되던 국민연금 등 연기금도 앞으로는 금융위의 승인만 얻으면 은행 지분을 소유할 수 있으므로 산은 민영화에 참여할 수 있다.

보험과 증권 금융지주회사가 자회사로 제조업 등 일반 기업을 거느릴 수 있게 된 것도 국내 산업지도에 적잖은 변화를 몰고 올 가능성이 있다. 낙관적인 시나리오로만 보자면 지주회사 체제 내에서 금융과 산업의 장벽을 허물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GE)처럼 지주회사 내에 금융회사와 제조업체나 서비스업체가 동시에 존재하는 회사가 탄생할 여건을 만들어 준 것이다.

◆“은행, 사금고 된다”=반대론의 핵심은 두 가지다. 경제력이 특정 재벌에 과도하게 집중될 수 있고,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로 전락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여기엔 감독을 강화하겠다는 정부의 설명에 대한 불신이 강하게 담겨 있다. 정부가 은행 돈을 자기 돈처럼 끌어 쓴 재벌기업을 적발했을 경우 은행의 대주주 자격을 박탈하는 것과 같은 강도 높은 제재를 실제로 가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13일 성명을 통해 “금산분리 완화는 ▶은행의 재벌 사금고화를 초래하고 ▶은행의 기업 감시 기능을 저해하며 ▶은행의 건전성·안정성이 나빠질 수 있다”며 철회를 요구했다. 이필상 고려대 교수도 “전 세계가 금융위기로 어수선한데 꼭 이런 때 금산분리 원칙을 완화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주현 금융위 정책국장은 “금융위기로 은행이 위기에 처하자 미국 중앙은행은 지난달 22일 산업자본의 소유한도를 10%에서 15%로 높였다”며 “은행의 자본 확충과 건전성 확보를 위해 위기가 심화될수록 금산분리 완화가 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엄정한 감독이 전제=지금은 일반 기업이 금융감독원의 관할 대상에 직접 포함되지 않지만 앞으로 은행 지분을 일정 수준 이상 지닌 곳은 금감원의 직접 규제 대상이 된다. 대주주 자격 심사, 자금 흐름 검사 등에 대해 금융회사 수준의 감독과 검사를 받는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또 ▶계열사들의 부실이 은행으로 전가되지 못하게 하는 ‘방화벽(firewall)’을 두고 ▶무분별한 자회사 편입을 제한하며 ▶금융지주회사 전체의 경영 건전성을 유지하도록 감독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런 감독 방침이 반대론자들에게 확실한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재벌에 대해 물렁물렁한 태도를 보이던 정부가 심각한 규정 위반을 범한 기업에 즉각적으로 옐로 카드(징계), 또는 레드 카드(퇴출)를 꺼내들겠느냐는 시각이다. 이에 대해 박영춘 금융위 금융정책과장은 “감독권을 대폭 강화할 것이기 때문에 소유한도 확대에 따른 부작용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준현 기자

재계 일단 환영…"은행 소유 계획 아직 없다”

 재계는 금산분리 완화를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금융과 산업의 칸막이를 허물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장 금융지주회사로 가거나 은행 소유를 추진하는 곳은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SK그룹 등은 “은행업 진출을 검토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발 금융위기와 경기 침체 등의 영향으로 변수가 많은 데다 현재로선 은행업 진출의 득실을 따지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지주회사 전환과 관련해선 일부 기업이 장기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삼성 등 주요 그룹이 당장 적용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삼성그룹은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로 돼 있다. 정부의 조치로 보험지주회사가 보험사와 제조업체를 각각 자회사로 둘 수 있게 허용됐지만 삼성생명 같은 보험사가 삼성전자를 곧바로 지배할 수는 없다. 지주회사가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를 각각 자회사로 둘 수만 있다.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핵심 지배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지주회사로 전환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지금 발표된 정도로는 기존 지배구조를 쉽게 바꿀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대한생명을 거느리고 있는 한화그룹의 경우 “보험지주회사나 은행업 진출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지주회사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동부화재의 경우 동부생명(31.3%), 동부증권(15%) 등 금융회사와 동부건설(13.73%), 동부제철(6.4%) 등 제조업체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이번 조치로 보험지주회사를 신설하면 산하에 금융회사와 제조업체를 함께 거느릴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동부화재 관계자는 “이전보다는 지주회사 전환이 약간 수월해졌다”며 “정부가 발표하는 세부 방안을 살펴보고 지주회사 추진 방안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양그룹은 후속조치로 일반 지주회사도 금융회사를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되길 기대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동양메이저를 주축으로 동양생명 등 금융 자회사와 제조업체를 포괄하는 지주회사 체제를 갖출 수 있다는 것이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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