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작기행>"마약전쟁 백년" 질 존스 著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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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이 담배도 마약이라고 선언했다 해서 얘깃거리가 되었다.이것을 보며 우리 사회에는 아직 마약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음을 새삼 느꼈다.
담배를 마약이라 했다는 것은 습관성 약물(addictive drug)이라고 말한 것을 오해한 것이다.그 말은 마약도 포함하는 것이지만,인체에 적극적인 해독을 끼치는 진짜 마약(narcotics)으로 곧바로 해석할 수는 없는 것이다 .
마약문제로 가장 고통받고,그러면서도 마약문제의 원흉으로 지목받기까지 하는 것이 미국사회다.20세기내내 마약문제는 미국의 대내외정책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해왔다.질 존스의 『마약전쟁 백년』(원제 Hep-cats,Narcs,and P ipe Dreams.스크리브너 刊)은 그 역사를 밝힌 책이다.
미국사회가 마약문제를 처음 의식한 것은 19세기 말의 일이었다.1860년대부터 철로건설을 위해 대거 이주한 중국인들의 흡연으로 아편중독의 폐해가 알려지기 시작했다.이것이 차츰 번져나가 세기말까지는 웬만한 대도시에 모두 아편굴이 생 겨 중국인 외에도 중독자가 늘어나게 되었다.엉뚱한 방향에서도 아편중독 문제가 불거졌다.중상류층 중독자가 대거 나타난 것이다.
무책임한 의사들이 손쉬운 처방으로 아편을 많이 쓰다보니 본의아니게 중독에 걸린 피해자가 많았다.특히 부인병의 처방에 많이쓰여 주부들의 중독이 많았다.
1906년에는 헤로인(아편 추출물)과 코카인의 약품사용을 규제하고 코카인 함유음료를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됐다.그리고 1914년에는 첫 마약금지법(Harrison Act)이 제정되었다.그러나 음성화된 마약시장은 지하에서 계속 자라나 며 범죄성을키워갔다.
마약시장의 범죄성이 본격화한 것은 20년대에 마피아가 개입하면서부터다.그 효시는 『위대한 개츠비』에 개츠비의 후견인으로 나오는 거물 아널드 로스타인이었다.「범죄의 천재」로 불린 로스타인이 마약시장을 조직하면서 마약은 암흑가의 최대 사업이 되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30년에 연방마약국이 만들어졌다.초대국장을 맡은 해리 앤슬링어가 이후 32년간 이끌어가는 동안 마약국은 미국 최강의 사법기관중 하나가 되었다.이것은 그만큼 마약문제가 자라난 것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저자는 앤슬링어의 탁월한 지도력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그의 관료주의적 성향과 정책의 단순성을 지적한다.마약국이 굉장한 활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정작 마약문제를 오랫동안 근절시키지못하고 오히려 더 악화시킨 이유의 상당분을 앤슬 링어의 독재체제에서 찾는 것이다.
앤슬링어가 퇴직한 후 마약국의 부패상은 엄청난 스캔들로 드러났다.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마약문제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이안된 것이다.실적위주의 마약정책은 문제를 진정 이해하려 하기보다 「마약은 범죄」라는 등식으로 몰아붙이기에만 급급했다.중독자재활방법 연구까지 봉쇄하려 든 것은 자기 조직의 일거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냉소적인 비판까지 받았다.
마약문제에 대한 미국정부의 도덕적 입장을 무엇보다 흐려놓은 것은 대외관계.특히 CIA 활동의 문제가 많이 지적된다.
CIA는 여러지역에서 자기네가 지원하는 집단의 경비를 조달하는 방법으로 마약의 재배와 밀수를 눈감아주거나 심지어 도와주기까지 해왔다.연전에 올리버 노스 중령의 증언에서 상당히 확인되기도 한 일이다.
CIA는 50년대 최대의 마약루트인 「프렌치 커넥션」의 코르시카 갱단을 우익활동을 벌이는 대가로 보호해 줬다.CIA가 라오스의 몽족과 미얀마 고원지대의 골든 트라이앵글을 지원한 대가는 주월미군의 대거 아편중독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리고 니카라과의 콘트라에 대해서는 미국내에서 엄청난 문제를일으키고 있던 코카인의 밀매를 눈감아줬기 때문에 마약상인들이 장사를 위해 콘트라에 가입할 지경이었다.
앞서 언급한 파키스탄의 마약 창궐도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파생된 일이다.아프간 게릴라들이 파키스탄에 주둔하도록 미국이 주선해 주면서 아편의 재배를 보호해줬기 때문에 파키스탄인이 갑자기마약에 노출돼 수백만명의 중독자를 낳게 된 것은 미국의 맹방으로서 깊이 경계할 일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대로 마약과의 전쟁에 있어서도적을 잘 이해하는 것이 긴요한 일이다.아직 마약문제가 심각하지않은 우리사회로서도 문제의 성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앞서 겪어온 미국의 경우를 참고로 하더 라도,더러는 타산지석으로 삼을 점이 있을 것이다.
***저자*** 질 존스는 컬럼비아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고존스홉킨스대학에서 미국사로 학위를 받았다.미국 사회사를 연구하며 뉴욕타임스.스미소니언등 신문과 잡지에 기고해 왔다.저서로는뉴욕시의 한구석을 연구한 『우리 아직 여기에(We're Still Here)』가 있다.
김기협 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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