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況을산다>5.끝.불황의 법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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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불황은 법률적으로도 여러가지 골칫거리를 몰고 온다.불황을 헤쳐나가는데 경제정책이면 됐지,법논리가 무슨 소용이냐고 하겠으나천만의 말씀이다.경제가 좋을 때는 관심조차 못 끌던 각종 경제법 규범들도 불황이 오면 모처럼의 「대접」을 받 게 마련이다.
불황이 장기화되면 많은 기업이 폐업하거나 도산하게 된다.또 구조조정이나 감원,기업간의 인수합병,어느것 하나 법률이 정하는절차를 거치지 않고 되는 일이 없다.정부주도의 우리 경제체질로보면 더욱 그렇다.
설마 파산이야 하겠느냐,최악의 경우라도 법정관리등을 통해 갱생의 길이 주어지지 않겠느냐는 생각은 호황시절의 낙관론이다.경제가 어려워지면 법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과거의 불황기에 겪었듯이 기업경영이 악화되면 가장 먼저 대두되는 문제가 법정관리신청 러시현상이다.채무동결을 통해 회사를 살려주는 대응책이다.그러나 이같은 회사정리결정도 점차 까다로워질 전망이다.대법원에서 최근 손질한 관련규정에 따 르면 회사의회생가능성을 보다 엄격히 따져 진짜 회생가능성이 큰 기업에만 갱생의 기회를 주기로 한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다급해진 기업들은 분식결산을 통해 위기를 일시적으로는 넘길수 있을지 모르나 결코 바람직한 방향도 아니요,과거 처럼 잘 통하지도 않게 되어 있다.
기업들은 구조조정,감원.감량등을 통해 스스로 살길을 찾으려 할 것이다.물론 법이 허용하는 테두리 안에서다.최근 자주 거론되고 있는 정리해고제가 주목거리다.기업주의 입장에서는 노동법상의 각종 제약을 염두에 둬야 한다.명예퇴직제도가 대기업의 경우활발히 이용되고 있으나 중소기업에서는 자금부담이나 고용환경 때문에 이 제도의 도입이 쉽지 않다.정리해고는 엄격히 법의 요건에 맞아야 한다.
이래저래 안되면 마지막 처방으로 기업을 팔아넘기는 비상수단이동원된다.더구나 요즘같이 경제가 구조적인 불황기에 접어든 상황에서는 기업의 인수.합병문제가 본격적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그러나 「사자」보다 「팔자」가 훨씬 많은 불황 기에는 기업처분이 생각같지 않을것이다.
만약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줄 실속있는 타기업체(경쟁기술보유업체,원료공급업체등)들을 인수할 수 있다면,그야말로 경쟁력제고를 기하는 매우 유용한 방법일수 있다.그러나 이는 기본적으로 인수 할만한 실속있는 중소기업체가 많이 육성된 상황에서 가능하다.중소기업에 기술과 고급인력이 축적되지 않은 상태에서 생산적인 기업인수는 기대하기 힘들다.
내년부터는 외국기업에 의한 국내기업 인수도 허용될 전망이다.
벌써부터 제조업하기 힘든 중소기업들은 외국기업에 적절한 값에 기업을 팔아 넘기고 힘이 덜 드는 서비스업종으로 전환해 볼까 해 상담을 요청해 오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비공 개법인의 중소기업 인수.합병에 대해서는 현재 사실상 법적인 규제가 없다.
공정거래법에서는 일정규모 이상의 대기업이 행하는 반 경쟁적 인수.합병만을 금하고 있다.
많은 경우 불황 타개책으로 경쟁업체끼리 여러 형태의 카르텔(담합)을 시도한다.그러나 이런 담합은 공정거래법에 의한 금지대상이다.이에대한 공정거래위의 대응도 갈수록 강해지고 있으므로 성공확률이 줄어들고 있다고 봐야 한다.법률상 불황 극복을 위한담합이 예외적으로 허용될 수는 있으나 그 요건이 엄격해 사실상예외인정을 받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밖에 재벌정책이 됐건,중소기업 지원정책이 됐건,모두가 법을통해 정부가 펴는 정책들이다.그러나 정부의 지원대책도 그전 같지 않다.직접적인 지원정책을 계속 쓸수도 없지만 그에 대한 평가 역시 결코 긍정적인 것이 못된다.오히려 기업 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거나 산업의 불균형 성장을 초래하는등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결국 아무리 불황이 심각해진다해도 과거와 같은 직접 지원은 기대하기 힘들다.도리어 과감한 규제완화와 함께 기업공시제도 강화나 회계감사의 실효성을 높이는등의 제도개선 쪽으로 기본틀을 잡아나가야 한다.이른바 투명성제고 노력이다.기업들 로서도 준법의식을 높이고 또한 법을 준수하는 기업만이 살아 남는다는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정부 스스로가 엄격.합리적으로 법해석을 하고 집행해야 가능한일이다.그래야 기업들도 과거처럼 정부의 지원책에 기대어 불황의턱을 넘겠다고 생각하거나 정책의 미흡만 탓하는 일방적인 비난을그만 두고 법에 따른 공정한 경쟁을 통해 불 황을 이겨내려는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불황기에 기대할 수 있는 값진 교훈일 수있다.
정경택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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