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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만들 때 직업까지 분석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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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슈마이스터(Schuhmeister)’란 직업이 있다. 독일어로 ‘정형(整形) 신발 장인’을 뜻한다. 단순히 신발 기술자인 ‘슈마허(Schuhmacher)’와는 다르다. 1·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독일에는 걷는 데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으로 넘쳤다. 이들에게 특수 신발을 만들어주는 슈마이스터가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게 그때다. 지금도 개개인의 발과 몸 상태에 따라 신발을 맞춰주는 슈마이스터 숍이 독일 전역에 2500개가 넘는다.

개인의 발에 맞춰 세상에 하나뿐인 신발을 만들어 주는 독일의 정형신발 장인 에발트 섀퍼.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올해 1월부터 서울 강남 신사동의 워킹슈즈 전문 멀티숍 ‘워킹온더 클라우드’에서 일하고 있는 에발트 섀퍼(50)씨는 33년의 경력의 슈마이스터다. 증조부, 할아버지, 아버지가 모두 신발장인이었다. 어려서부터 신발 만드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 중학교를 마친 뒤 자연스럽게 제화 기술을 배우는 직업전문학교에 들어갔다. 졸업하고도 슈마이스터 자격증을 따기 위해 제화회사와 보건소 등에서 15년 가까이 경력을 쌓았다. 한국에는 우연한 계기로 오게됐다. “독일 워킹슈즈회사 바르텔에서 한국에 파견할 슈마이스터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봤어요. 젊었을 때부터 아시아에 관심이 많았던 데다, 한국에는 아직 슈마이스터라는 직업이 알려지지 않아 할 일이 많다는 데 매력을 느꼈습니다.”

‘워킹 온더 클라우드’에서 그는 고객들의 발을 분석하고 각각의 몸상태에 맞는 인솔(교정용 깔창)이나 신발을 만들어준다. 걷기가 불편하다는 손님이 찾아오면 일단 발 스캐너와 발 프린터, 족압 측정기 등을 이용해 발의 특징을 분석한다. “신발을 만들 때 발만 관찰해서는 안 돼요. 걸음걸이는 물론 당뇨·류머티즘 등의 병력, 교통사고 경험, 직업까지 철저히 분석해야 어떤 신발을 만들지 판단이 서죠.”

올해 5월부터는 장애인 재활 단체인 푸르메 재단과 함께 매달 보행이 불편한 장애인 5명에게 정형신발과 맞춤 인솔을 제작해주는 활동도 하고 있다.

지난 33년간 만든 신발의 수가 어림잡아 2000여 족. 모든 게 수작업이라, 하나 만드는 데 1주일 정도 걸린다. “걷기는 온몸에 자극을 주는 최고의 운동이죠. 한국인들의 걷기 열풍은 바람직하다고 봐요. 하지만, 잘못 걸으면 오히려 건강을 망칠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해요.”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는 하이힐을 오랜 기간 신어 무지외반증(엄지발가락이 굽는 것)이 나타난 여성, 잘못된 걷기자세 때문에 족저근막염(발바닥 근막에 염증이 생기는 것)에 걸린 사람이 많다. “맞는 신발을 신고 집중하며 걸어야 합니다. 발 뒤꿈치 오른쪽, 새끼 발가락, 엄지 발가락 순으로 땅에 닿도록 리드미컬하게 걸으세요.”

틈날 때마다 발가락을 꼼지락 꼼지락 움직이고 저녁에는 손으로 발가락을 하나하나 주물러 피로를 풀어주는 것도 발의 변형을 막는 좋은 방법이다.

가족을 모두 독일에 두고 홀로 한국에 온 지 8개월, 쉬는 날엔 서울 근교의 산을 오른다. “서울은 가까이에 멋진 산이 많아요. 걷기 좋아하는 이들에게 최고의 환경이죠.” 관악산을 오르던 중 한 노부부가 건네준 사과는 그의 산행을 더욱 행복하게 해주었다.

“말 한마디 안 통하는 제게 먹던 사과를 반으로 뚝 잘라 건네주더라고요. 사람들이 말하는 ‘한국인의 정’이란 게 이런 거구나 느꼈습니다.”

글=이영희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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