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료기술은 반도체 수준 … 세계 허브 되게 규제 풀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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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일 위원장은 "의료 외에 관광·금융 부문의 규제개혁에도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근 기자]

 “의료 분야의 허브 국가가 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과감히 풀겠습니다. 의료 외에 관광과 금융 분야의 규제도 개혁할 것입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국가 경쟁력 순위가 현재 31위인데 5년 내 15위로 끌어올리겠습니다.”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사공일(68) 위원장은 최근 KTX 대구행 열차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시 그는 대한상공회의소가 마련한 대구 지역 기업인과의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길이었다. 국제통이며 대표적인 시장주의자인 그는 요즘도 매일 영어 단어를 외우며, 머리를 맑게 하기 위해 중국산 보이차를 즐겨 마신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왜 의료 허브 국가인가.

“우리의 의료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반도체 못지않다. 이미 오래전부터 우수 인력이 의대로 많이 몰렸다. 정부가 규제만 잘 풀어주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올해 세계 의료시장 규모는 5조 달러(약 6000조원)에 이를 걸로 추산된다. 고령화와 소득 향상으로 시장은 더욱 커질 것이다. 인도나 중국과 같은 신흥시장에서도 의료서비스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이런 점에 착안해 해외시장 진출, 연구개발 활성화, 우수인재 발굴을 위한 보고서를 만들고 있다. 싱가포르와 태국 사례를 참고하고 있다. 12월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하는 회의에서 의료서비스 경쟁력 강화 방안을 보고할 계획이다.”

-규제 개혁의 기준은 뭔가.

“한마디로 글로벌 스탠더드다. 경쟁국에 없는 규제가 있다면 그것부터 없애겠다. 요즘 기업들은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들면서 사업한다. 좋은 여건을 만들지 않으면 그들은 바로 떠난다.”

-취임한 지 7개월이 넘었는데.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열심히 듣고 개선하고 있다. 얼마 전 한 기업인이 콩 수입을 할 때 세율이 낮은 할당관세 물량을 왜 농수산물유통공사만 독점하느냐고 말했다. 충분히 일리 있는 지적이라고 판단해 관련 제도를 고쳤다. 또 산업단지를 조성하려면 문화재 조사를 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 전문가로 구성된 문화재 위원들이 한 달에 한 번 모이고 있었다. 그래서 수시 심의로 바꿨다. 그런데 산 넘어 산이었다. 문화재 조사 인력이 부족해 일 처리가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조사요원은 다른 지역에서는 활동할 수 없게 돼 있었다. 예컨대 일거리가 없는 경북의 전문가가 일손이 달리는 충남에 가서 할 수 없었다. 또 전문가 한 명이 한 개의 작업팀만 운영할 수 있게 돼 있었다. 이것도 고쳐 여러 팀 운영이 가능하도록 했다.

기업의 바쁜 걸음을 잡는 것 중엔 이른바 ‘도롱뇽 문제’도 있다. 그간 도롱뇽의 생태는 사계절을 관찰한 뒤 평가하도록 했다. 그런데 사계절을 안 보고 한 계절만 보고도 평가할 수 있는 과학적인 방법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를 근거로 동물 생태계 평가도 크게 간소화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 환경이나 문화재를 무시하면서 기업을 돕겠다는 말은 아니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하자는 얘기다.”

-과거에도 규제를 획기적으로 풀겠다고 했지만 성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현 정부 출범 7개월 동안 매달 열리는 경쟁력 강화위에 대통령이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참석한 것만 봐도 과거와는 다른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 자문기구로서 옥상옥이라는 지적이 있는데.

“출범 초기 업무분담 문제로 일부 오해가 있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각 부처의 통상적인 규제 개혁은 자체적으로 한다. 총리실의 규제개혁위원회는 신설되는 규제를 주로 담당한다. 반면 우리는 부처가 혼자 하기 힘든 이른바 ‘덩어리 규제’를 개혁하는 데 조정자 역할을 한다. 아직까지 규제 개혁의 성과를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럴 수밖에 없다. 대부분은 법을 새로 만들거나 개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말 현재 규제 개혁 관련법 170개, 기업 하려는 의지를 북돋우는 행정형벌 및 행정제재처분 개선 관련 379개 등 총 598개의 법률 개정을 추진 중이다.”

-얼마 전 ‘수도권 규제가 지방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는지 한번 짚어봐야 한다’는 말을 했는데.

“수도권 규제는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목표를 위해 만들었다. 특히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기업 밀어내기’ 목적이 짙었다. 그런데 요즘은 국가 간 경계도 없어졌다. 여건이 좋은 다른 나라로 갈 수도 있기 때문에 수도권에서 밀어낸다고 지방으로 간다는 보장이 없다. 따라서 국토균형발전에도 기여하지 못하고 국가 경쟁력만 떨어뜨릴 수 있다. 앞으로 지방자치단체는 스스로 ‘기업 끌어들이기’를 해야 한다. 지자체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의 투자 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의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 수도권 규제를 계속해야 한다는 주장보다 낫다. 동시에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에 행정자치권과 교육자치권을 더 줘야 한다.”

-당초 약속했던 법인세 인하가 유예됐는데 기업들에 신뢰를 줄 수 있겠나.

“약속대로 현재 25%인 법인세를 5년 내 20%로 내리는 것은 반드시 지킬 것이다. 중소기업은 13%에서 10%로 내린다. 법인세 인하는 세계적인 추세다.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 미국의 헨리 폴슨 재무장관,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도 앞으로 3~5%포인트씩 내리겠다고 했다. 현재 대만은 17.5%, 홍콩은 16.5%, 싱가포르는 18%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규제 완화를 골자로 하는 ‘작은 정부 큰 시장’이 공격받고 있다.

“미국의 실패를 당연히 우리도 연구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금융산업은 선진국에 비해 모든 면에서 너무 처져 있다. 미국·영국은 1970년대부터 금융규제를 크게 완화하고 과감한 자율화를 했다. 우리는 이제부터 그런 방향을 가야 한다. 지금은 규제 완화를 통해 금융의 경쟁력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한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작은 정부라고 해서 정부가 꼭 해야 할 일마저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금융건전성 규제와 감독이 바로 그런 일이다.”

-최근 법질서 확립 방안도 연구하고 있다고 들었다.

“우리나라의 준법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중 최하위권이다. 이를 OECD 평균 수준으로만 올리면 성장률을 1%포인트 올릴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그런 차원에서 엄정한 법 집행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법제도 선진화팀도 만들었다.”

김시래 기자

◆사공일 위원장=서울대· 미국 UCLA를 졸업한 뒤 뉴욕대 교수, KDI 부원장, 산업연구원장을 역임했다.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1983~87년)과 재무부 장관(87~88년)을 지냈다. 93년 창설한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으로서 세계적 석학들과 꾸준히 네트워크를 유지해 오고 있다. 대표적인 시장주의자이며 개방론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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