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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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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의 진부령 계곡에 황태 덕장이 들어선 것은 1960년대 초반이다. 양명문 작시, 변훈 작곡의 가곡에도 나올 만큼 명태잡이의 대명사로 통했던 원산에서 월남한 어민들이 강원도 여기저기에서 덕장을 벌였다가 날씨가 안 맞아 실패하는 시행착오 끝에 정착한 곳이 용대리였다.

덕장은 하늘과 사람이 7대 3으로 동업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기후가 중요하다. 혹독한 추위와 세찬 바람, 한낮의 햇볕 속에서 얼었다 녹는 과정을 겨우내 되풀이하는 동안 조직이 부드러워지고 노릇노릇한 색깔이 들어야 비로소 황태가 되는 것이다. 그런 황태가 제값을 발휘하는 건 해장국에 들어갈 때다. 명태는 다른 생선보다 기름기가 적고 풍부한 단백질에 해독 성분까지 함유하고 있어 생태건 북어건 국을 끓이면 술 마신 사람의 위장을 추스르는 데 그만이다.

용대리의 덕장에 널리는 명태의 대부분이 러시아산으로 바뀐 건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명태는 베링해와 캄차카반도 근해에서 지내다가 가을에 우리나라 동해안으로 내려오는 한류를 타고 와 이듬해 3월까지 머문다. 그런데 근년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동해의 온도가 올라가는 바람에 러시아 명태가 내려오지 않게 되면서 국산 명태는 씨가 마를 판이다. “북어 뜯고 손가락 빤다”는 옛 속담에서 보듯 가난한 집에서 고기는 못 사먹어도 북어는 어렵잖게 먹을 수 있었던 시절은 까마득한 옛날 얘기가 되고 말았다.

서민들의 밥상에 오르던 명태가 급기야 지엄한 한·러 정상회담의 회담 테이블에 오르게 된 건 그런 연유에서다. 이명박 대통령은 “명태는 제사상에 빠질 수 없을 만큼 한국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음식”이라며 어획량 배정에 협조를 구했다고 한다. 그 결과 러시아는 자국 어장에 들어와 잡을 수 있는 명태 쿼터 7000t을 늘려주겠다고 지난주 알려왔다. 전략적 관계로의 상승이란 공허한 미사여구보다는 그런 실질적인 성과가 차라리 서민의 피부에 와 닿는다.

펀드가 반 토막 나고 경기가 얼어붙어 가뜩이나 속 쓰린 일이 많은 때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쪼그라든 살림 걱정에 중국산 멜라민 우유·과자로 인한 먹거리 걱정까지 겹치니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가 다시 찾아온 느낌이다. 그렇게 마신 술로 속이 쓰리면 러시아산 명태를 말린 황태국으로 달래야 하는 세상이다.

예영준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