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성장 위주의 경제정책 패러다임을 버려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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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호 02면

경제위기는 우리에게 살아남기 위한 변신을 강요하고 있다. 나의 직장은 벌써 감원을 고민하고 있을지 모른다. 내가 그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 나의 재산은 급속히 쪼그라들고 있다. 집값이 떨어지고 노후 생활의 꿈이었던 해외펀드는 반 토막 났다. 그런데 돈 들어갈 구석은 늘어만 간다. 아이들이 크면서 교육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사업에 실패한 동생도 힘 닫는 대로 도와줘야 한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위기 대응 모드로 살림살이를 확 바꾸는 것이다. 적자 가계부에 대비해 아직 남아 있는 현금성 자산을 안전하게 잘 챙겨 놔야 한다. 소비도 꼭 필요한 쪽으로 한정해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과거 잘나가던 시절의 습성대로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원래 계획했던 일이라며 집을 넓히고 인테리어 공사까지 대대적으로 한다고 생각해 보자. 만약 그 사람이 직장이라도 잃게 돼 대출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면 집을 압류당하고 월세 집으로 쫓겨가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지금 대한민국의 나라 살림이 꼭 이와 같다. 이명박 정부는 경제위기의 쓰나미가 밀려드는 상황에서도 과거 문제가 없던 시절에 만든 경제정책 기조를 금과옥조처럼 쥐고 있다. 이른바 ‘747 목표(7% 성장, 소득 4만 달러, 7대 강국)’가 대표적이다.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확대와 주택 500만 호 건설, 그린벨트 해제 등의 조치가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

지금은 총체적 난국이다. 흥청망청 성장 위주의 정책을 계속 밀고 나갈 상황이 아니다. 앞으로 정부가 재정을 직접 투입해야 해결될 일이 봇물을 이룰 게 뻔하다. 경기침체로 직격탄을 맞게 될 저소득층과 영세 자영업자, 중소기업 등은 결국 정부의 도움을 받아야 어려운 시기를 넘기게 될 것이다. 반면 불황의 여파로 세수(稅收)는 예상보다 적을 게 뻔하다.

747 목표를 버리고 서둘러 안정 위주의 정책 방향을 세워야 한다. 경제정책을 위기 대응 모드로 전환하는 게 옳다. 세계 각국도 그렇게 가고 있다. 정부가 앞장서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야 한다. 토목공사 비용을 줄여 위기 수습용으로 비축해 둬야 한다. 경우에 따라선 감세정책도 탄력적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재정의 건전성이 크게 훼손될 것으로 판단된다면 감세의 속도와 폭을 조절하는 유연한 자세가 요구된다. 금융시스템도 서둘러 보강해야 한다. 금융 중심지 전략 같은 데 힘을 소모할 때가 아니다. 국내 외환시장의 허점을 치유하는 한편 금융감독의 사각지대가 없도록 시장밀착형 정책을 펴야 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게 맞다. 747 목표와 운명을 같이해 온 현 경제팀이 자연스레 물러나줘야 새 정책도 빛을 발할 것이다. 국민에게 위기 극복을 위한 고통 분담을 호소하기 위해서도 새 얼굴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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