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위) 마리넬리 카네기멜런대 ETC 소장이 캐리커처 화가가 디지털로 그린 자신의 초상화 앞에서 웃고 있다. (사진 아래) 고(故) 랜디 포시 교수와 생전에 함께 찍은 사진. 미국 카네기멜런대의 ETC(Entertainment Technology Center·대중문화기술센터)는 과학기술과 문화예술을 결합해 산업적 성과를 일구어 내는 세계적 연구소이자 교육기관(석사 과정)으로 알려져 있다. ‘과학·예술 국제 심포지엄’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ETC의 공동 설립자 도널드 마리넬리 교수를 9일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만났다. ETC 대학원생이 만들어 내는 실습 결과물은 디즈니·픽사와 같은 애니메이션·게임 제작회사는 물론 병원·박물관·공공기관 등에서 탐낼 정도로 그 창의성과 상업성을 인정받고 있다. ETC의 성공 요인에 대해 마리넬리 교수는 “교수가 학생보다 더 많이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학생들의 지적재산권을 보장해 준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문화·기술 융합의 모범’ 카네기멜런대 ETC 도널드 마리넬리 소장
1998년 그와 함께 ETC를 설립했던 인물은 바로 ‘마지막 강의’를 통해 수많은 사람의 가슴을 울렸던 랜디 포시(지난 7월 타계) 교수다. 연극배우 출신인 마리넬리와 뛰어난 컴퓨터공학자 포시의 만남은 ETC 성공의 중요한 밑바탕이 됐다.
-당신은 “세상은 연극무대이고 모든 사람은 배우”라는 셰익스피어의 말을 인용하며 “우리의 존재는 이제 연극보다 비디어게임에 더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게임과 유비쿼터스 공간의 출현은 어떤 관계가 있나.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은 쌍방향성이다. 우리는 얼마 전 불치병에 걸려 죽어가는 아동들의 병동에 공급하기 위해 3D 애니메이션을 개발했다. 아이가 홀로그램 기술로 띄운 별을 손으로 따 자신의 바람을 말하고 작은 상자에 넣는 식이다. 쌍방향적 기술은 가상현실과 인간의 감성이 소통하는 장을 만들어 낸다.”
-웹 기술은 가상현실 중독, 악성 루머와 사생활 침해 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중독이나 타인에 대한 험담은 새로운 기술과 상관없이 인간이 원래 가지고 있던 ‘악’이다. 게임에 빠진 아이는 야단치면서 독서 중독에 빠진 아이는 왜 야단치지 않는가. 첨단기술이 모든 악을 만들어 낸 ‘판도라의 상자’라고 비판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다. 댓글이나 음반 불법 다운로드와 관련해 최근 웹 공간에서 자정작용이 일어나는 것은 눈 여겨볼 만한 일이다.”
-당신은 아인슈타인과 가상의 인터뷰를 할 수 있는 디지털 도서관 프로젝트에 참여한 바 있다. 공학자가 아닌 당신은 어떤 역할을 했나.
“과학자는 보통 의사소통이나 스토리텔링에 약하다. 가상의 아인슈타인이 대화를 할 때 어떤 몸짓과 표정을 지을지, 그리고 어떤 말을 할지… 이 모든 숙제를 푸는 데 나의 연극 경력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공학자가 만든 알고리즘도 100% 완벽하지 않았다. 하루는 어떤 관람객이 ‘아인슈타인 박사님, 삶의 의미가 뭘까요’라고 물었는데, 혼란에 빠진 아인슈타인이 ‘어렸을 때 난 발가락이 매우 컸는데, 그 때문에 양말에 계속 구멍이 났어. 난 그 후로 양말을 신지 않아’라고 횡설수설했다. 그런데 관람객의 반응이 의외였다. ‘그래, 알았어. 발가락은 나의 삶이야. 양말은 나를 억누르는 사회적인 구속이고. 이를 벗어나기 위해 나는 양말을 벗어야 하는구나. 감사합니다, 아인슈타인 박사님!’ 인형에 불과한 아인슈타인에게 사람이 모여들었고 감성적 공감이 일어났다. 과학이 예술을 만났을 때 이뤄낸 조그만 기적이다.”
-포시 교수와는 호흡이 잘 맞았나.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사람들은 내기를 했다. 둘 중 하나가 다른 사람을 죽일지도 모른다고(웃음). 취미부터 생활습관까지 우린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아무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내기로 결심한 우리는 무려 6년간이나 사무실 방을 같이 썼다. 랜디는 나에게 연극과 예술을 배웠고, 나는 랜디에게 컴퓨터공학을 배웠다. 신입생 선발 때도 함께 심사해 좌뇌와 우뇌에 골고루 잠재력이 있는 학생을 뽑을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