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영 기자의 글로벌 인터뷰] 한·일 연대로 ‘뜨는 중국’ 균형 잡아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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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호 14면

미국 뉴욕주의 바드대 석좌교수인 이언 부루마(56·사진)는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가 뽑은 ‘2008년 세계 100대 지성’이다. 부루마는 뉴욕 타임스·파이낸셜 타임스 등 유력 매체에 광범위한 주제의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동아시아에 대한 부루마의 견해를 알기 위해 전화 인터뷰를 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 『암스테르담 살인 사건』(2006년)에서 네덜란드 사회에서 관용이 지니는 의미를 따졌다. 모든 갈등은 관용의 부재에서 온다는 생각에 관용의 정의부터 물었다. 그는 “법을 어기지 않는 한 사람들이 바라는 대로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라고 제시했다.

‘세계 100대 지성’ 이언 부루마가 말하는 동아시아의 미래

-관용과 민주주의는 어떤 관계인가.
“관용 없는 민주주의는 없다. 하지만 민주주의 없는 관용은 가능하다.”

-관용으로 유명한 나라인 프랑스는 실제로 관용적인가. 이슬람을 믿는 이민자 문제로 관용의 전통이 깨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프랑스는 아직 관용적인 나라다. 다만 국가 이념이 세속주의(secularism)라는 게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프랑스는 특정 종교의 집단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프랑스의 이슬람 신자들은 집단적 권리를 바란다.”

-미국은 어떤가.
“미국에서도 이슬람은 관용의 대상이다. 갈등은 오히려 종교인과 비종교인 사이에 빚어지고 있다. 종교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는 그리스도교인들이 이슬람에 대해 같은 종교인으로서 호의적인 측면도 있다.”

-중국의 부상은 미국의 헤게모니를 위협하는가.
“미국 경제체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중국에는 더 큰 정치적 문제들이 있다. 중국처럼 통제된 체제에서도 인간의 욕심은 갈등을 일으킨다. 미국의 쇠퇴와 중국의 부상이 축구 경기와 같은 제로섬 게임으로 진행되지는 않겠지만 그 과정은 매우 혼란스러울 것이다.”

-중국의 부상으로 깨질 동북아 세력균형을 위해 한국과 일본이 같은 민주국가로서 연대하는 것은 어떤가.
“그런 연대가 필요하다. 아시아를 한 나라가 지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동남아시아나 미국을 끌어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일본을 묶어두는 효과도 있다. 일본의 우경화를 막는 것이다. 유럽의 통합도 독일 민주주의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한 연대는 중국을 ‘화나게’ 하지 않을까.
“연대의 운용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반(反)중국 성격을 띠어서는 안 된다. 중국도 한국과 일본이 같은 민주국가로서 공통의 이익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일본에는 과거 자신이 일으킨 전쟁에 대한 죄의식(war guilt)이 없다. 한·일 연대를 가로막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독일과 다르다. 왜 그런가.
“독일에서는 집권세력 교체가 있었으나 일본의 경우 제국주의 시대의 관료들이 대부분 그 자리를 지켰다. 일본에서 과거사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정치적인 문제다. 죄의식을 지니고 있는 것은 좌파지만 이들은 소수다.”

-한국과 일본의 정치적 미래는 어떤가.
“한국 정치가 더 건강하다. 한국 정치의 미래가 밝은 것은 정당 간에 정권을 주고받고 있기 때문이다. 1970년대에 세계인들은 유교문화까지 거론해 가며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달성되려면 수십 년이 더 걸릴 것으로 봤다. 그러나 한국은 민주화됐다. 일본은 정치적으로 틀에 박힌 현상유지를 하고 있다. 진정한 권력 이동이 없는 데다 관료의 힘이 너무 강하다.”

-한반도 통일 전망은 어떻게 보는가.
“통일은 북한 정권의 붕괴로 급격하게 이뤄질 것이다. 통일을 한국이 혼자 감당하지는 못할 것이다. 일본·중국·미국의 협력이 필요하다. 한국 내부에선 일본과 미국이 한반도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는 시각이 있다. 미국과 일본이 바라는 것은 지역 안정과 안보를 위협하지 않는 ‘질서 있는’ 한반도 통일이다. 통일 자체를 꺼리지 않는다. 현상유지를 바라는 것은 중국이다.”

-누가 차기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는 게 한국에 유리한가.
“누가 되건 한·미나 북·미 관계에서 별다른 정책상의 변화는 없다고 본다. 양 후보의 정책 사이엔 수사(修辭)적인 차이가 있을 뿐이다. 버락 오바마가 당선되는 경우 미국의 이미지가 한국 내에서 개선될 것으로 본다. 존 매케인이 더 강경하게 보이지만 이것 역시 수사의 문제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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