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에세이] 일본 숙박시설 38% “외국인 안 받아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일본 전국의 호텔·여관 등 숙박시설 가운데 37.8%는 외국인 여행자를 받은 경험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72.3%는 “앞으로도 외국인 여행자 숙박은 바라지 않는다”고 밝혔다. 총무성이 4~5월 전국의 호텔과 여관 1만6113곳을 대상으로 한 조사다.

일본 정부는 일본 숙박업계의 ‘외국인 기피증’이 예상보다 많은 데 대해 크게 당황하고 있다. 2010년까지 외국인 관광객 1000만 명 유치 목표를 세우고 이달 1일 관광청을 발족하는 등 본격적인 ‘관광입국’에 나섰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2005년부터 ‘어서오세요’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워 600여만 명에 머물던 외국인 여행자 수를 지난해 처음으로 800만 명대로 끌어올렸다.

풍부한 온천과 맑은 공기, 울창한 산림이 가치 있는 여행 상품으로 인정받은 데다 지난해까지 아시아 통화의 강세에 힘입어 한국과 중국 관광객들이 크게 몰렸다. 한국인들은 지난해 일본을 찾은 관광객 가운데 3분의 1에 달하는 260만 명을 차지하며 일본 관광 열풍의 주역이 됐다. 일본 남부 규슈(九州)지역은 한국인과 중국인 관광객 때문에 지역경제가 돌아간다는 말이 나오고 있을 정도다. 일본은 이런 여세를 몰아 아시아 7위, 세계 30위에 머물고 있는 외국인 여행자 유치 실적을 크게 끌어올리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숙박업계의 외국인 기피 현상은 일본이 지향하는 ‘관광입국’에 적지않은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 뻔하다. 외국인 기피 이유(복수 응답)를 보면 ‘외국어 대응이 불가능하다’가 75.7%로 가장 많았다. 그 밖에 ‘시설이 외국인 여행자에게 적합하지 않다’ ‘문제가 생길 경우 대응이 불안하다’ ‘요금 정산 방법이 불안하다’는 등의 이유도 있었다.

이런 이유들은 자세히 뜯어보면 외국인 자체를 싫어한다는 것은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외국인을 상대하는 것이 귀찮다는 반응이다. 철저한 매뉴얼 사회인 일본에서는 숙박시설도 세계 최고 수준의 친절과 안락함을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외국인 손님은 행동 양식이 다르고 말이 안 통하는 경우가 많아 대처하기 어렵다는 의식이 강하다. 이런 현상을 남의 나라 일로만 여길 것은 아니다. 관광산업이 미래산업이라는 점에서 한국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현상이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