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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Review] 진리 … 언어 … 자유 … 34가지 질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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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나는 누구인가』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지음
백종유 옮김, 21세기북스
504쪽, 1만9800원

 ‘나는 누구인가?’. 묵직한 제목이다. 하지만 겁먹지 말자. 책의 원제는 이 무거운 질문 뒤에 철학적 농담을 덧붙였다. ‘나는 누구인가-이미 알고 있다고요? 그렇다면 몇가지나 알고 계신지?’ 책은 내가 알고 있는 나는 진짜 나인지,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등을 설명하며 ‘나를 찾아 떠나는 철학 여행길’로 독자를 안내한다.

64년생인 저자는 독일의 학술 저널리스트로 쾰른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 과정을 마쳤다. 독일의 대표적 시사 주간지 슈피겔이 ‘영화에 지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해도 손색이 없겠다’고 표현할 만큼 수려한 용모를 지닌 인물이기도 하다. 이쯤 되면 영화 배우 뺨치는 외모를 가진 연예인 기질의 철학자가 대충 얽어낸 교양 서적 정도라고 얼핏 판단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책이 다루는 주제의 학문적 깊이는 탄탄하다. ▶진리란 무엇인가 ▶언어란 무엇인가 ▶자유란 무엇인가 등 34개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철학의 세계로 독자를 매끄럽게 안내한다. 바캉스 시즌에 어울리지 않는 철학서로서는 드물게 지난여름 독일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 책이다.

저자는 철학, 특히 인식론의 영역을 뇌의학과 인류학으로 넓히며 인류가 가진 자아개념을 묻는다. 니체는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진리에 근거해서 세계를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무지한 것인지를 격정적으로 보여준 인물이다. 인간의 사고를 규정짓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충동과 본능, 원초적인 의지라는 점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하지만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시대는 이미 다윈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원숭이에 대한 관심이 신에 대한 그것보다 컸던 시대다. 니체는 우울한 마음으로 인간은 ‘영리한 동물’일 뿐이라며 다윈의 주장을 복음처럼 설교하기도 했고, 기분이 좋을 땐 초인을 꿈꾸며 오락가락했다고 한다. 저자는 니체의 고민을 철학사 안에서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시대에 이미 큰 화두가 됐던 ‘인류의 기원’과 같은 진화론적, 생물학적 연구 성과로 확장한다. 고고 인류학의 성과를 바탕으로 유인원 뇌의 발달과정을 좇으며 인식의 경계를 더듬기도 하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신경과학의 관점에서 설명하기도 한다.

저자는 “대학이 허용하는 철학은 다른 학문세계에 대해 장벽을 쌓음으로써 자기 영역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아카데미즘에 빠진 대학교육의 과거 회귀적인 철학이 동시대 지향적인 철학을 억압하면서 권위를 행사하고 지배하는 현실에 저항하는 것이다. 원제 『Wer bin ich-und wenn ja, wie viele?』.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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