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도 아니고 사전 대본도 없지만 캐릭터 역할극이 드라마 못잖은 재미를 자아낸다. 요즘은 매사 엉뚱하고 비상식적인 ‘4차원’ 캐릭터가 인기다.
캐릭터는 긍정적인 것만이 아니다. ‘진상’ ‘밉상’ 등 비호감을 자처하는 것도 있다. 비호감이라도 캐릭터가 있는 편이, 아예 없는 것보다 낫다는 얘기다. 매사 완벽해 나를 기죽게 하는 가상의 ‘엄친아(엄마친구아들)’처럼 일상 속에서 만나는 캐릭터도 있다. 웹상에서는 메신저 아이디 등 온라인 정체성을 드러내는 캐릭터 한두 개쯤은 누구나 갖고 있다. 드라마도 줄거리 못잖게 캐릭터가 재미있어야, 드라마도 뜨고 배우도 뜬다.
이쯤 되면 캐릭터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개성과 자기 표현에 대한 열망이 가장 큰 요인이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튀지 않고서는 존재를 각인시키기 힘들다는 절박감도 느껴진다.
최근 가요계의 ‘중독성’ 코드도 비슷하다. 따라 하기 쉽고 한 귀에 들어와 박히는, 중독성 강한 멜로디와 춤이 히트의 요인이다. ‘텔 미’ ‘노바디’ 등의 원더걸스가 대표적이다. 반복적인 한두 구절로 승부하는 CM송 스타일에, 가수·춤·노래를 포괄하는 캐릭터가 중시된다.
저스틴 와이어트는 『하이 컨셉트-할리우드 영화 마케팅』에서 25자 미만으로 요약할 수 있는 영화를 ‘하이 컨셉트 영화’라며 이런 단순함이 흥행의 필수요소라고 지적했다. 복잡하거나 심오해서 한두 마디로 규정하기 힘든 예술영화와는 정반대다.
어찌 보면 캐릭터 열풍이나 가요계의 ‘중독성’코드나, 이 ‘하이 컨셉트 컬처’의 일환이다. 최대한 단순하고 반복적이며 유아적·유희적이다. 캐릭터 놀이라는 것도 복잡다단한 인간사를 한 가지 두드러진 특징 안으로 밀어넣고 단순화·유형화하는 데서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만큼 ‘하이 컨셉트’ 대중문화가 실제 삶의 복잡미묘함을 담아낼 가능성도 줄고 있다는 얘기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