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위기 수습할 리더십이 안 보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금융위기가 눈앞의 현실이 되어가는 가운데 정작 위기를 수습할 리더십이 이 정부엔 보이지 않는다. 국내외 금융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급박하게 돌아가고, 금융위기가 급기야 실물경제의 위기로 번질 조짐까지 보이고 있으나 이 정부엔 위기의 불길을 잡을 수 있는 믿음직한 소방수가 보이질 않는 것이다. 작금의 환율 급등락과 주가 추락 등 금융시장의 혼란은 미국에서 발생한 금융위기의 탓이 크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건실한 것으로 평가받는 우리 경제가 위기상황으로까지 치달은 데는 정부에 대한 시장의 신뢰 상실이 큰 몫을 차지한다. 시장이 정부를 믿지 못하니 대책의 약발이 먹히질 않고 오히려 위기를 악화시키고 만 것이다. 정부가 뭐라고 해도 시장이 믿지 않는 상황에선 백약이 무효일 수밖에 없다. 멀쩡한 외환보유액을 두고도 불안감이 증폭되고 달러 사재기가 벌어지게 된 것은 정부의 위기 수습능력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의 환율 급등과 주가 추락은 신뢰 상실의 대가가 얼마나 큰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와중에 이명박 대통령은 다음 주초 라디오 연설을 통해 최근의 경제 위기상황에 대한 입장을 밝히겠다고 한다.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 직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큰 성공을 거뒀던 노변담화(爐邊談話) 형식을 빌려 국민들의 협조를 구하겠다는 것이다. 위기상황에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국민을 설득하겠다는 뜻이야 뭐랄 것이 없다. 그러나 그런 식의 ‘따라 하기’로는 국민에게 믿음을 줄 수 없다. 어쩌면 이번 사태를 너무나 피상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이 든다. 정말 필요한 것이면 당장이라도 나섰어야 한다. 지금 일이 다급한데 매주 월요일에 나서겠다는 다분히 행사성 접근으로 무슨 무게가 실리겠는가.

또 지금이 진정 위기상황이라면 말로만 위기를 말할 게 아니라 위기를 수습할 실질적인 대책이 앞서야 한다. 정부의 신뢰 상실이 문제라면 이를 회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찾는 일이 급선무다. 시장에 불이 났다면 일단 불부터 먼저 끄고 볼 일이지 일반 국민을 상대로 앞으로 불을 어떻게 끄겠다는 설명을 할 겨를이 없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홍보성 이벤트가 아니라 실제로 위기에 빠진 경제를 살려내는 능력이다.

이 정부가 시장의 신뢰를 잃게 된 것은 현 경제팀이 그동안 해온 정책 혼선의 책임이 크지만 경제팀 내에 분명한 수장이 없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정부 내에 컨트롤 타워가 없기 때문에 위기상황에 맞서 범정부 차원의 신속하고 일관된 대응책을 펼치지 못한 것이다. 부처마다 다른 소리를 해대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에서 신뢰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위기 때일수록 산처럼 버티고 선 듬직한 리더십이 절실한 법이다. 그래야 국민과 시장 참여자들이 정부의 말을 믿고 따를 수 있고, 정책도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자면 우선 현 경제팀을 일신해야 한다. 경제부총리직을 신설하든, 아니면 실질적으로 경제팀장의 권한을 주든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분명한 수장을 세워야 한다. 경제 수장에게 위기관리의 책임을 맡기고 대통령이 위기수습을 독려한다면 정책 효과도 커지고 국민들에 대한 설득력도 높아질 것이다.

[핫이슈] 미국발 금융 쇼크

[J-HOT]

▶ [사설] 불났으면 당장 꺼야지 MB는 월요일에 끄겠다고?

▶ "57년 벤츠 타며 미군들 기죽인 끝에…" 박정희의 도박, 월남파병

▶ 7초 늦었다고…눈앞에서 사라진 170억원

▶ 서울 아파트값 뚝뚝…그나마 약간 오른 단3곳

▶21억 들어간 휴게텔, 3년째 아무도 사용 안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