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청, 돈 받고 부적합 식품 통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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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경인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 직원 A씨(6급)와 B씨(8급)는 2004년 1월부터 7월 사이 식품 수입업체 H사로부터 휴가비와 알선 소개비, 골프연습장 비용 등의 명목으로 다섯 차례에 걸쳐 210만원을 받았다. 이들은 그 대가로 이 회사가 수입한 부적합 가공식품 원료가 1월 중순 한국식품연구소 검사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자 검사 기관을 식품공업협회 부설 식품연구소로 옮겨 재검토를 요청했다. 식품공업협회 부설 식품연구소도 부적합 판정을 내렸다. 그러자 이들은 압력을 행사하며 판정 결과를 바꿔 줄 것을 요구해 결국 적합 판정을 받아냈다. 당시 가공식품 원료에서는 사용이 금지된 합성 방부제 ‘프로피온산’이 검출됐다. 식약청은 이들의 비위를 뒤늦게 찾아내고도 8급 직원은 소멸 시효(뇌물·향응 등은 3년)가 지났다는 이유로 경고를, 6급 직원에게는 정직 2개월의 가벼운 처벌을 내렸다.

식약청 C서기관은 2007년 1월부터 올 8월까지 20개월 동안 외부 강의를 79번이나 나갔다. 한 달에 네 번꼴이니 거의 매주 외부 강의를 나간 셈이다. 4일 연속 외부 강연에 나간 적도 있다. C서기관이 받은 강연료는 20개월 동안 1780만원. 보통 서기관의 연봉이 4000만~5000만원인 점을 고려하면 연봉의 3분의 1 이상을 외부 강연으로 벌어들였다.

식약청 직원의 도덕적 불감증이 심각하다. 관리 감독을 해야 할 식품·화장품·제약업체로부터 돈을 받는 대가로 부적합 수입 식품을 적합 식품으로 둔갑시키고, 업체가 주최하는 강연회에 참석해 거액의 강연료를 챙기기도 했다.

◆“뇌물·향응 징계는 솜방망이”=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최영희(민주당) 의원이 9일 식약청으로부터 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6년 12월 부산지방식약청장으로 근무하던 D씨는 관내 식품업체 대표 등으로 구성된 식품안전관리협의회의 송년모임에 자신의 출판기념 행사를 끼워 넣었다. 이때 뒤풀이에서 노래방 비용 등으로 나온 270만원도 관내 식품업체 대표가 계산했다. D씨는 ‘불문 경고’ 징계만 받았다.

식약청 차장을 지낸 E씨는 화장품 제조업체인 K사 대표이사 명의 신용카드 한 장을 가지고 다니면서 2006년 6월부터 2007년 10월까지 611만원을 사용하다 적발됐다. E씨는 사건이 불거져 중앙징계위원회로부터 정직 1개월의 처분을 받자 사퇴했다. 최 의원은 “뇌물·향응을 받은 직원에 대한 식약청의 징계 수위가 매우 약하다”고 지적했다.

◆직원 외부 강연이 1212건=지난해 식약청 공무원이 외부 강의에 1212회 참석해 2억9700만원을 강의료로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식약청이 전현희(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국감 자료다. 올해도 8월까지 식약청 공무원의 외부 강의 횟수는 858회로 강의료로 1억9000만원을 받았다. 외부 강의 횟수 상위 10위에 드는 공무원의 평균 강의 횟수는 43회, 평균 강의료는 1034만원이었다.

지난해에는 대형 식품회사에서 주최하는 강의에 식약청 공무원 7명이 20회나 출장 강의를 나갔다. 이 식품회사에서 공무원에게 제공한 강연료는 1394만원으로 1회에 70만원씩을 받았다.

공무원은 공무원행동강령에 따라 ▶월 3회 또는 월 6시간을 초과하거나 ▶1회 강의료가 50만원을 초과하는 외부 강연을 하면 신고해야 한다. 식약청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규정을 강화해 모든 강연에 대해 신고토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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