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미국 대선] 보이는 곳선 백인, 안 보이는 곳선 흑인 공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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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버락 오바마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8일 인디애나주의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인디애나폴리스 AP=연합뉴스]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 진영은 인종 문제를 건드리는 걸 금기로 삼고 있다. 인종 문제가 불거져 흑백 대결 구도가 형성되면 대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오바마 측 판단이다.

오바마의 전략 가운데 핵심은 백인을 안심시키는 일이다. “흑인인 오바마가 대통령이 돼도 백인은 피해를 보지 않는다”는 확신을 백인 사회에 심어주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이다. 오바마는 그러면서도 흑인 표를 챙기고 있다. 백인을 끌어들이면서 흑인 표를 독식하면 정권을 잡을 수 있다는 전략이다.

오바마 측은 매우 영리한 이중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공개된 곳에선 백인 후보처럼 선거운동을 하고, 언론에 잘 노출되지 않은 곳에선 흑인 표를 흡인하는 일에 몰두한다. 오바마는 디트로이트 등 흑인이 밀집해 있는 대도시에선 대규모 집회를 열지 않는다. 흑인이 집회장에 구름처럼 몰리면 백인의 거부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TV 광고 모델로 주로 백인을 쓴다. 백인이 광고를 보고 편안함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다.

오바마는 흑인이 많이 모인 곳에는 주로 대타를 보낸다. 가수 제이 Z, 러셀 사이몬스나 프로농구 선수 레브론 제임스 등 흑인 스타들이다. 그들이 나타나 오바마를 대변하면 흑인 대중은 열광한다고 한다.

오바마는 흑인 라디오 방송도 활용한다. 그걸 통해 흑인의 유권자 등록과 단결을 촉구한다. 그는 6일 2개 지역의 흑인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흑인의 표가 플로리다·인디애나·노스캐롤라이나·오하이오 등에서 승부를 바꾼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유권자로 등록하고, 반드시 투표하라”고 권유했다.

오바마는 흑인 이발소와 미용실·책방도 지지 획득의 거점으로 이용한다. 흑인이 많이 모이는 이곳에 운동원을 보내 “미국을 바꾸자”고 권한다. 그런 활동은 언론에 잘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다수 대중은 오바마가 백인에게 더 공을 들이는 것처럼 여긴다. 오바마가 백인 여성층에서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보다 더 많은 지지를 받고, 백인 남성층 지지확보 경쟁에서도 매케인을 추월하는 흐름을 탄 건 ‘보이는 곳에선 백인, 안 보이는 곳에선 흑인’을 공략하는 전략이 통했기 때문이다.

오바마 측은 전통적으로 공화당이 강세를 보였던 남부의 몇 개 지역을 장악하면 대선에서 쉽게 승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플로리다·노스캐롤라이나·버지니아 등이다. 이곳엔 흑인 인구가 25∼20%쯤 된다. 오바마 측은 백인의 경계심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흑인을 똘똘 뭉치게 하면 이들 지역에서 매케인을 누를 수 있다고 기대한다.

버지니아주 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NAACP) 킹 살림 칼파니는 8일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흑인 목사) 제시 잭슨이 대선에 처음 도전했을 때인 1984년부터 흑인 유권자 등록운동을 전개했지만 이번처럼 열기가 강한 적은 없었다”며 “놀라운 일”이라고 했다. 플로리다주 NAACP 관계자도 같은 얘기를 했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버지니아와 플로리다에서 오바마가 매케인을 추월하는 여론조사가 나오는 건 금융위기 탓도 있지만 흑인을 상대로 한 오바마의 조용한 선거운동이 주효한 이유도 있다.

오바마는 8일 공개된 갤럽 여론조사에서 52%의 전국 지지율을 기록, 매케인(41%)과의 격차를 11%포인트로 벌렸다. 그러나 같은 날 나온 로이터통신·조그비 조사에선 오바마(48%)와 매케인(44%)의 지지율 차이가 크지 않았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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