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택의 펜화기행] 0.03mm 펜촉에 담은 ‘대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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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 먹펜, 43x58cm, 2008.

세계에서 제일 가는 펜촉의 굵기가 0.1mm인데 사포에 갈면 약 0.03mm가 됩니다. 숙달이 되면 이 펜촉으로 1mm 안에 5개의 선을 그을 수 있습니다. 이런 세밀한 기법을 한껏 발휘하여 진천 보탑사(寶塔寺) 3층목탑을 그렸습니다. 완성하는 데 한 달이 걸렸습니다. 지은 지 12년밖에 안 되었지만 꿈에서라도 보고싶던 황룡사 9층대탑을 보는 듯 감격하였기 때문입니다. 펜으로 복원한 것이 아니라 복원한 실물을 꼼꼼하게 그린 것이지요.

현존하는 목탑과 중층 건물은 모두 통층 내부로 단층인 셈이지만 보탑사 목탑은 황룡사 대탑처럼 층계를 설치하여 각층에 법당을 만들었으며, 바깥에 난간마루를 설치하여 탑돌이를 할 수 있습니다. 높이가 일반 건물 14층 높이인 42.71m며, 1500명이 들어갈 수 있답니다. 1층과 2층 사이, 2층과 3층 사이에 암층이 있어 실제는 5층인 셈입니다.

지붕 귀퉁이 추녀마루 끝에 하늘로 치솟은 ‘곱새 기와’와 그 밑에 ‘도깨비 기와’로 잘못 알려진 ‘용면 기와’가 떡 버티고 있습니다. 박물관에서나 보던 유물이 실제 건물에 살아있으니 반갑기 짝이 없습니다. 사래 토수도 청동을 부어 만들어 새롭습니다. 처마 공포는 삼국시대 형식으로 기둥 위에만 설치된 주심포이며, 소의 혀처럼 생긴 ‘쇠서’가 없어 소박합니다.

보탑사 목탑을 지은 김영일 행수와 조희환 도편수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큰 법당 서너 채와 맞먹는 불사를 한 지광 큰스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옛 건물만 문화재가 아닙니다. 보탑사 3층목탑이 문화재가 될 날이 있을 것입니다. 제 작품을 보고 펜화를 공부하시는 분들은 보탑사로 가셔서 똑같은 구도로 사진을 찍어 제 펜화와 비교해 보세요. 카메라 렌즈와 사람의 눈이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습니다. 사진 그대로 그리면 왜 감흥이 줄어드는지 생각해 보세요.

김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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