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덕의 13억 경제학] 중국증시(41) “망가질 대로 망가져야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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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주식시장의 개미들은 지금 부글부글 끓고 있습니다. 분노를 표출할 힘도 없어 보입니다. 그들이 화내는 것은 유통주에 대한 당국의 처사입니다. 당국이 비유통주 문제의 심각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개미들은 "국가가 더 많은 기업을 상장시키기 위해 사기쳤다"라는 말까지 합니다.

/주가가 폭등할 때 당국은 기업 상장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많은 대형 국유기업이 시장에 올랐다. 상장된 기업은 일반 투자가들의 주머니를 긁어갔다. 일반 국민들의 돈이 국유기업 통장으로 흘러 들어간 것이다. 국유기업의 주인은 국가다. 결국 주가 폭등을 틈타 국가만 살 찐것이다/

중국의 한 증시전문 사이트에 나온 댓글 내용입니다.

돌이켜보면 왜 비유통주 문제가 거론되지 않았겠습니까? 언론에서도 나왔고, 당국 역시 워닝(warning)사인을 보냈습니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개미들은 주가폭등에 취해 모두 귀닫고 있었습니다. '보지만 귀담아 듣지 않는다(視而不見)'는 식이었지요.

샹푸린(尙福林) 증감위 주석을 비롯한 증권당국자들은 곤란한 처지에 몰렸습니다. 주가폭락의 근본 원인이 비유통주 에 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재산 축낸 주범'으로 지탄받게 된 것이지요. 샹 주석도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결국 비유통주 개혁을 손질하기 시작했지요.

그동안 크게 3차례 비유통주 관련 시장안정 대책이 나왔습니다.

우선 지난 4월 증감위는 비유통주를 가진 주주가 보유 주식의 1%이상을 매각할 경우 장외에서 거래하도록 했습니다. 비유통주 개혁은 흔들림없이 추진할 것이라는 기존 입장에서 물러선 것입니다. 두 번째는 7월 21일 발표됐습니다. 매월 초 비유통주 매각 상황을 정기적으로 공개하라는 조치였지요.

이같은 조치는 아시다시피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온 게 지난 9월 5일 발표된 '전환사채 발행'입니다. 비유통주를 갖고 있는 주주는 해당 주식을 근거로 전환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도록 했습니다. 근거 주식 시가의 70%선에서 발행할 수 있습니다. 전환사채를 매입한 기관(또는 개인)은 1년후 시장 상황을 봐서 주식으로 전환할 수도 있도록 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세번째 방안이 가장 현실성있어 보입니다. 비유통주를 팔지 않고서도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 조치는 단서가 붙습니다. 최근 회계년도 순자산이 15억 위안 이상이거나 또는 3년간 평균 순자산 수익률이 6%를 넘어야 합니다. 이 조건을 만족시키는 비유통주 주주는 전체의 30%. 나머지 70%는 그마나 전환사채를 발행할 수도 없습니다. 게다가 시장 전망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전환사채를 살 기관(개인)이 얼마나 있을 지도 의문입니다. 1년 후 주가가 지금보다 떨어지면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지요. 전환사채의 효과는 더 두고 봐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증시주변에서는 이같은 비유통주 개혁 완화 조치에 대해 찬반양론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우선 시장을 살려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주식개혁 일정을 늦춰는 한이 있더라도 주가를 띠워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들은 '先救市,後治市(먼저 증시를 살리고, 이후에 제도개선에 나서야 한다)'를 말합니다. 주로 업계 전문가들의 입장이지요.

이와는 반대로 단기적인 고통이 따르더라도 개혁작업을 끝까지 밀고가야 한다는 주장도 거세게 제기됩니다. 어설픈 미봉책은 장기적으로 주식시장을 더 어렵게 한다는 것이지요. 개혁작업의 수정은 응당 감내해야할 고통을 뒤로 미룰 뿐이라는 겁니다. '長痛不如短痛(오래 아픈 것이 짧게 아픈 것 만 못하다)'입니다. 그들은 '주가가 갈 때까지 가야한다'고 말합니다. 학계와 관계(官界)에 널리 퍼져있습니다.

이 논란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지는 역시 당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이냐에 달려있다고 하겠습니다. 제 판단으로 볼 때 '작은 조정은 있을 지언정 큰 흐름은 그대로 간다'는 것이 증권당국의 기본 방침입니다. 시장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약간의 보완책은 나올 수 있지만 '2010년까지 비유통주를 시장에 완전 풀겠다'는 방침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얘기지요.(샹푸린)

그동안의 추진된 비유통주 개혁을 '중간점검'해보지요.

비유통주로 풀릴 주식은 A주 상장업체 전체 주식의 약 60%가 됩니다. 이중 지난 8월말 현재까지 개혁프로그램에 따라 비유통 규제에서 해제된 주는 1084억 주가 됩니다. 이 중에서 실제로 시장에 풀린 주식은 약 263억 주(전체의 24.3%)에 달하고 있습니다.

263억 주의 내역을 다시 나눠보면 184억 주가 '샤오페이(小非. 지분 5%미만의 주주)'였고, '다페이(大非.지분 5%이상의 주주)'는 79억 주에 불과했습니다. 샤오페이는 주식개혁 완료 후 1년 안에 풀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 집중적으로 시장에 풀리고 있습니다. 비유통주 문제의 본게임은 아직 시작도 안했다는 얘기입니다.

문제는 개혁완료 2년 후 본격적으로 시장에 출하될 다페이입니다. 내년부터 다페이가 갖고 있는 비유통주 물량이 본격적으로 시장에 풀리게 됩니다. 비유통주 해제의 큰 파도가 저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정부는 국유기업을 상대로 '비유통주를 함부로 팔지 말라'고 압박하고 있습니다. 다페이가 주로 대형 국유기업으로 구성됐기 때문이지요. 은행 에너지 등 7개 핵심 분야 업종은 지분율 70~80%를 유지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업체들도 51%이하로는 지분을 매각하지 말도록 했습니다. 원자바오 총리는 '기업도 국가와 사회를 걱정해야 한다'며 자제를 당부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그런 까닭에 실제 비유통주 충격이 예상보다 작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긴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국유기업이라고 하더라도 기업은 기업입니다. 지금과 같은 규제라면 국유기업 다페이의 비유통주 매각은 언제든지 시장을 충격 속으로 몰아넣을 수 있습니다. 중국 증권업계 전문가(홍롱 증권지성 사장)는 "주가가 1300포인트 이상이면 국유기업은 비유통주 매각으로 이익을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비유통주의 존재 자체가 시장심리를 지속적으로 위축시킬 수 있게 됩니다.

유통주 문제가 증시를 계속 괴롭히자 일각에서 '폭리세를 부과하자'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비유통주를 파는 주주들에게 판매가의 70~80%를 세금으로 거둬들이자는 것이지요. 특히 인민일보에서 이 주장이 제기됐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증권당국은 이 안에 대해 부인도, 긍정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주가가 걷잡을 수 없이 폭락한다면 '폭리세'카드를 뽑아들 수도 있다는 신호로 해석됩니다.

이는 곧 중국이 '폭리세'라는 극한적인 카드를 꺼내들지 않는한 비유통주 문제는 앞으로도 장기적으로 시장을 위축시킬 것임을 반증하고 있기도 합니다.

한우덕 기자=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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