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프랑스의 '역사 바로세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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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프랑스는 그동안 2차대전중 나치 점령기를 레지스탕스의 투쟁사로 많은 부분 미화해왔다.반대로 나치의 꼭두각시 정부였던 비시정권이 저지른 부역(附逆)의 역사에 대해선 종전 직후 단행된 대숙청을 끝으로 과거를 숨겨두길 원했다.
프랑스는 7만6천명의 유대인을 나치수용소로 송출했지만 모두 잔인한 독일인의 짓으로 돌렸다.프랑스의 명배우를 총동원해 레지스탕스의 활약과 파리 해방을 그린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와 같은 유의 영화는 많았지만 나치에 빌붙은 프랑스의 모습을 담은영화는 거의 없었던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 프랑스가 지난 18일 2차세계대전중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가담한 모리스 파퐁(86)을 반인륜행위죄로 반세기만에 법정에 세우면서 깊은 자괴감에 빠지고 있다.
프랑스가 자국인을 나치 부역 혐의로 소급시효도 없고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도 적용되지 않는 반인륜죄를 적용,심판하기는 역사상 두번째다.
그동안 나치하에서 경찰총장을 역임한 르네 부스케는 93년 재판도중 암살되는 바람에 심판이 무산됐고 처음으로 유대인 7명을총살시킨 폴 투비에는 94년 종신형을 선고받았지만 하급장교에 불과하다.
그러나 파퐁은 43년 유대인 1천6백90명을 독가스실로 보낼당시 비시정권 아래서 보르도 경찰차장이라는 고위직이었다는 점에서 재판이 진행되면 나치에 부역한 프랑스의 자화상은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날 소지가 높다.
그런 파퐁이 해방후 드골정부에서 파리 경찰총장을 역임했고 국회의원을 거쳐 81년 사건의 발단이 된 문건이 발견될 때까지 예산장관을 지내며 존경받아온 사실은 더욱 치욕적일 수밖에 없다. 프랑스는 15년 동안 논란을 벌인끝에 파퐁을 재판에 회부,과거의 치부를 스스로 들춰내는 수모와 고통을 감수하기로 한 것이다. 반세기가 지나 모든 이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는 어두운 과거를 파헤치려는 프랑스의 용기는 우리의 「역사 바로세우기」운동에 교훈이 되는 대목이다.
고대훈 파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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