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對北 경각심 다시 가다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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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무장공비가 출현한 18일은 북한과의 평화공존에 대한 지난 몇년간의 기대가 무참히 깨진 날이다.세상이 아무리 바뀌고 남북한관계가 어떻게 진전되든 북한의 대남(對南)폭력혁명노선은 변함없음이 거듭 확인됐다.
북한의 호전성이나 대남혁명노선을 우리가 몰랐던 것은 아니다.
다만 경수로 건설과 경제교류논의가 오가는 분위기 속에서만은 노골적 폭력은 없을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다.냉전시대의 청산과 북한의 경제난을 보면서 섣부른 도발은 못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에 젖었던 것도 그런 기대에 큰 몫을 했다.그러나 적어도 대남혁명전략에 관한한 북한은 아직 아무 것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이번에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강릉의 무장공비소식에 대한 국민 대다수의 첫반응은 어처구니 없고 속셈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반응자체가 바로 우리가 북한 공산주의의 정체(正體)를 한동안 잊고있었다는 반증(反證)이다.
이처럼 폭력혁명노선이 북한의 본질이자 속성이라는 인식이 무디게 된데는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도 한몫했다.그러나 북한은남북대화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줄곧 공작원을 파견하는 등 우리 기대를 저버렸다.
무장공비침투와 관련해 우리가 경계해야 할 점은 북한 내부의 동향이다.식량난으로 체제위기론이 고개를 드는 등 가장 허약해 보이는 상황에서 이런 무모한 도발을 벌인 배경이 무엇이냐는 점이다.이와 관련해 우리가 주목할 점은 최근 북한 내부에서 개방을 주장하는 온건론자들의 입지가 약화되고 군부를 중심으로 한 강경론자들이 득세하는 듯한 조짐이다.
그러한 조짐은 여러분야에서 정책의 일관성 결여로 나타나고 있다.나진.선봉의 우리 기업인 초청계획이 갈팡질팡하는 것 등이 그러한 예다.이처럼 내부가 혼란스러울 때 모험주의자들의 목소리가 득세할 가능성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더욱이 대내적인 불만을 위기 상황조성으로 풀어가려는 유혹을 그들이 갖게 될 경우 이번과 같은 도발을 또 시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사태는 북한의 정체를 재인식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돼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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