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이 경쟁력이다] 안동 간고등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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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 복장을 한 ‘간잽이’ 이동삼씨가 소금을 치기 위해 살이 오른 고등어를 꺼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안동=조문규 기자]

지난 3월 9일 부산항 허치슨 부두에서 컨테이너 하나가 배에 실리고 있었다. 칠레로 첫 수출되는 안동 간고등어였다. 수출 물량은 1t 분량 4000여마리, 미화로 약 3만달러(약 3600만원)어치다. 한국.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이후 칠레로 나가는 첫 수산물이었다. 내륙 안동의 간고등어가 수산물 왕국 칠레에까지 수출되고 있다. 출시 5년 만이다. 간고등어는 미국.캐나다.멕시코 등 북미지역과 일본.호주 등 9개국으로 수출길을 넓혔다.

◇내륙에서 태어난 간고등어="맛이 참 독특하다. 쫄깃하고 고소한 게 입맛을 당긴다."

지난 2월 홍콩 국제식품박람회장에서 칠레 바이어들이 안동 간고등어 구이를 시식하고 한 말이다. 이들은 "칠레엔 수산물이 많지만 이처럼 염장(鹽藏) 처리된 것은 처음 맛본다"며 즉석에서 수입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박람회에 참가했던 ㈜안동간고등어 류영동(45) 대표이사의 말이다. 간고등어를 현대적으로 상품화하는 아이디어는 1999년 한 술자리에서 나왔다. 의류 유통업을 하던 柳대표는 98년 불어닥친 외환위기로 사업을 접었다. 그러다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 귀가 번쩍 뜨이는 소리를 들었다.

"(안동)신시장 어물도가(어물전) 간고디(간고등어) 잘 들여다봐라…안동 명품이 될 수 있데이."

그는 순간 '이거다'며 무릎을 쳤다. 위생적으로 포장.처리해 마케팅으로 연결만 하면 물건이 될 것 같다는 판단이 섰다.

그는 곧바로 시장조사에 나섰다. 서울과 부산.대구.청주 등의 어시장을 다니며 발품을 팔았다. 당시 그가 파악한 고등어 시장규모는 연간 3000억원 정도.

柳대표는 "이 중 간고등어가 10%만 차지해도 사업성은 충분할 것으로 판단했다"고 회고했다.

99년 4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안동 하회마을 방문은 柳대표의 구상에 날개를 달아줬다.

"당시 안동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이었습니다." 그는 안동에 대한 관심을 마케팅으로 연결하기 위해 부심했다. '안동'을 함께 팔아야겠다는 전략도 세웠다.

그래서 아예 상표를 '안동간고등어'로 정했다. 최고의 맛을 내기 위해 40년 동안 안동 신시장을 지킨 '간잡이' 이동삼(64)씨도 스카우트했다.

◇안동을 대표하는 '효자'상품으로=柳대표는 99년 추석을 앞두고 비닐팩으로 포장한 시제품 2000마리를 백화점 바이어들에게 보냈다. 이들은 "맛은 옛날 그대론데 포장은 현대식"이라며 좋은 반응을 보였다.

백화점.대형 할인매장 등에서 주문이 쏟아졌다. 안동 출신들은 자기 물건인 양 주변에 입소문을 내줬다. 이듬해 7월 홈쇼핑 판매를 시작했고, 11월엔 철도청 열차판매 특산품 1호로 지정되면서 열차 안에서 판매가 가능해졌다. 고속도로 휴게소에도 공급하기 시작했다. 간고등어는 요즘은 물건이 없어 수요를 대지 못한다고 한다. 주 공급지인 제주 연근해의 고등어 어획량이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간고등어가 유명해지자 안동에만 후발업체 10여개가 속속 등장했다. 올해 ㈜안동간고등어의 매출 목표는 300억원. 그 사이 직원은 100여명으로 늘어났다. 2001년부터 지난달까지 수출액은 42t에 24만달러 정도. 이제 매출과 고용에서 이 회사는 안동에서 가장 큰 제조업체가 됐다. 나머지 간고등어 업체의 매출액은 모두 합쳐 30억원 정도.

간고등어가 뜨면서 지역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만만찮다. 간고등어를 취급하는 음식점만 안동에 10여 곳이 생겨났고, 전문 판매점도 하회마을 등 6곳에 들어섰다.

㈜안동간고등어는 전통문화 발굴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엄동설한에 석빙고에 얼음을 채우는 행사인 장빙제(藏氷祭)를 발굴해 세차례 재현했다. 또 바지게꾼과 등짐장수가 간고등어를 운송하던 모습도 향토 학자들의 고증을 거쳐 복원했다. 직원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안동석빙고보존회와 안동간고등어보존회란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조병태(36)상무는 "간고등어라는 상품이 안동의 문화에서 나온 만큼 지역 전통문화를 발굴하고 지키는 일은 우리의 또 다른 의무"라고 말했다.

◇대학.시청도 협조=안동과학대학은 출시를 앞두고 9개월여에 걸쳐 포장용 비닐팩을 개발했고 로고와 디자인도 고안했다. 지금은 보편화됐지만 생선 포장용 비닐팩은 당시로선 생소한 것이었다. 또 전통의 맛을 살리기 위해 식품공학적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안동시는 99년 가을 시판을 앞두고 간고등어를 지역 특산품으로 지정해 판촉을 지원했다. 시정 설명회나 대외 행사 등에 빠지지 않고 안동 특산품으로 소개하고 있다. 산(産).학(學).관(官) 세 축이 힘을 모아 히트 작품을 만든 셈이다.

안동=송의호 기자<yeeho@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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