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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tyle] 세련미 넘치는 의자 어떻게 태어났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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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디자인이 경쟁력인 시대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디자인이 있어도 이를 인정해 줄 사람이 없으면 아무 쓸 데가 없다. 중요한 것은 뛰어난 스타일을 인정해 주는 감각 있는 소비자다. 산업 디자인은 소비자의 감각을 늘 자극하는 매개체다. 특히 감수성 높은 여성이라면 아기자기한 주방용품이나 가구에 관심이 크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산뜻한 디자인의 물건은 어떻게 태어났을까.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 스테파노 조바노니를 만나 그 디자인의 비밀을 들어봤다. 그는 국내 소비자에게도 익숙한 다수의 작품을 내놓은 바 있다. 물론 조바노니의 작품은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은 것이 많다. 그의 해설을 따라 세계 1위 경쟁력의 이탈리아 산업 디자인의 매력 속으로 들어가 보자.

 ◆봄보=조바노니는 스툴의 기본형이 된 ‘봄보’를 가장 자랑스러워했다. 스툴은 가장 오래된 형태의 서양식 의자로 등받이와 팔걸이가 없는 것을 지칭한다. 봄보는 1993년 처음 출시돼 올해로 15주년이 됐고, 그동안 이 스툴을 원본으로 한 다양한 형태의 디자인이 개발될 만큼 큰 인기를 모은 작품이다. 물론 여전히 가장 인기 있는 것은 15년 전 그가 디자인한 원형(原形) 스툴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중국에만도 그의 작품을 똑같이 모방한 스툴을 생산하는 업체가 수백 개에 이른다.

기본 스툴인 봄보는 지금은 지구촌 어디서나 볼 수 있다. 특히 스타일리시한 카페와 바 등에선 비슷한 형태의 의자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주방 인테리어의 보조 작업대인 ‘아일랜드 주방’의 의자로도 인기 있다. 조바노니는 “지금은 너무 당연하지만 처음 디자인할 때만 해도 아무도 스툴이 위 아래로 움직인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봄보는 높이 조절이 가능한 최초의 스툴이다. 봄보의 또 다른 특징은 의자의 안장 부분이다. 엉덩이가 닿는 부위는 인체의 곡선을 따라 디자인돼 있다. 지금은 일반적인 형태의 의자에도 적용된 디자인이다. 마지막 비밀은 등받이다. 앉는 부분의 뒤쪽을 둥글려 올린 형태는 등받이가 없는 것이 기본인 스툴에 등받이 역할을 하도록 설계됐다. 모든 것이 당시로선 생소한 디자인이었다. 조바노니는 “처음 내놓았을 땐 350달러라는 비싼 가격에다 낯선 형태 때문인지 반응이 별로였다”며 “그런데 지금 나온 스툴은 모조리 다 내 작품을 따라한 것이다. 모조품만 없었으면 지금쯤 엄청난 부자가 됐을 것”이라며 웃었다.

◆매직 버니=백화점 주방용품 매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쑤시개통 ‘매직 버니’는 조바노니라는 이름보다는 ‘알레시(Alessi)’라는 브랜드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마술사 모자 속에 토끼가 들어 앉은 모양새가 깜찍하다. 조바노니는 “생각도 못하는 곳에서 튀어나오는 이쑤시개가 마치 마술사의 모자 속 토끼 같다는 것이 컨셉트”라고 설명했다. 토끼를 잡아 당기면 통 속의 이쑤시개가 위로 올라오도록 설계돼 있다. 플라스틱으로 된 제품이지만 국내 소매가격이 3만원대로 비싼 편이다. 하지만 워낙 깜찍한 모양인 데다 색상도 다양해 젊은 주부들에게 인기가 많다. 이쑤시개를 많이 쓰는 일본에서 가장 반응이 좋아 일본에선 같은 컨셉트로 디자인한 NTT도코모의 휴대전화 버전도 출시됐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산업디자이너 스테파노 조바노니, 1989년 출시 이후 전 세계를 휩쓴 ‘지로톤도’ 시리즈의 접시, 스툴의 기본형이 된 ‘봄보’.(왼쪽부터) [알레시 제공]

◆지로톤도=산업 디자인계의 전설로 남은 조바노니의 작품은 바로 ‘지로톤도(Girotondo)’다. 쟁반에서부터 각종 식기에 이르기까지 지로톤도 시리즈는 89년 출시된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700만 개 이상 팔렸다. 지금도 전 세계 곳곳의 주방용품 매장에서 지로톤도 시리즈가 팔리고 있다. 지로톤도는 우리의 강강술래와 비슷한 놀이를 일컫는 이탈리아어다. 소년·소녀가 손을 맞잡고 노는 모양이 디자인의 기본 포인트다. 조바노니는 “알레시에서 디자인 의뢰를 받았을 때 기존의 알레시 디자인을 생각했다. 그전까지는 알레시 디자인이 너무 복잡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단순함’이었다. ‘단순함=꼬마’였고 그것이 이 디자인의 정체성이 됐다”고 설명했다.  

◆원스텝 플루이드= 조바노니는 국내 팬들에게 한 발 더 다가서기 위해 최근 국내 화장품 업체의 용기를 디자인했다. 아모레퍼시픽의 이니스프리 ‘원스텝 플루이드’다. 허브를 주제로 한 화장품 용기 디자인은 허브잎을 형상화했다. 용기의 한쪽 옆선을 따라 녹색의 줄기가 올라가고 뚜껑의 한쪽 부분을 정확하게 허브잎 모양으로 만들어 냈다. 조바노니는 “누가 봐도 한눈에 허브가 주제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산업 디자인은 정체성이 한눈에 각인되게 하는 것이 관건”이라며 “한국의 산업 디자이너들이 새겨들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또한 “디자이너라면 디자인 역사에 남기 원한다. 하지만 산업 디자이너는 그래선 안 된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만드는 것이 산업 디자인”이라고 강조했다.



세계적 디자인 기업 ‘알레시’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디자인 기업이다. 1921년 주방용품을 만드는 회사로 출발했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소리가 나는 주전자(다 끓으면 또 다른 소리를 낸다) 등 상상을 뛰어넘는 디자인으로 이름을 높였다. 이후 스테파노 조바노니 같은 스타 디자이너나 자하 하디드, 필립 스탁 같은 유명 건축가에게 주방용구 디자인을 맡기면서 더욱 유명세를 치렀다. 필립 스탁은 알레시에서 발이 세 개 달린 레몬즙 짜는 기구를 내놓아 주목을 받기도 했다. 현재 알레시에 소속된 디자이너는 따로 없다. 외부 전문가에게 디자인을 의뢰하고, 알레씨는 기획과 생산만 담당한다. 디자인은 외부에 맡기지만 알레시는 생산 기획에서 독특한 문화를 갖고 있다. 수십년간 신제품 디자인을 평가해 판매가 잘 될지를 잘 알아맞혔던 평가단만을 따로 모아 디자인을 심사하도록 하는 것이다. 의뢰를 받은 디자이너들은 알레시에 디자인 시안과 시제품을 보내 품평단이 선택한 것을 최종안으로 선택한다. 현재 알레시는 가장 비싼 가격대의 ‘오피치나 알레시’와 기존의 알레시, 대중적인 가격대의 ‘아 디 알레시’ 세 가지를 내놓고 있다.

밀라노(이탈리아)=강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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